◇최강희 감독이 지난달 4일(한국시각) 영국 말로우 비샴 애비 스포츠센터에서 A대표팀 훈련을 지휘하고 있다. 말로우(영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
바람처럼 흐른 시간이다.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최강희의 세상이었다. K-리그 전북 현대 사령탑 시절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바람몰이를 했다. 애제자 이동국과 에닝요를 선봉장으로 세워 국내 무대를 평정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알사드(카타르)의 더티플레이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으나 우승팀보다 더 큰 환호를 받았다. '봉동 이장' 최강희는 전북에서 뼈를 묻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세상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밀실행정으로 조광래 전 감독을 경질했던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과 집행부가 최 감독에게 읍소했다. 완강히 거절했던 최 감독도 조 전 회장의 삼고초려에 결국 마음을 돌렸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내가 A대표팀을 이끄는 것은 최종예선까지다. A대표팀을 본선에 올려 놓은 뒤 전북으로 돌아가겠다." A대표팀 사령탑이 스스로 시한부를 자처한 초유의 사태였다. 통솔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뚝심으로 밀어 붙였다. 부임 후 첫 관문이었던 쿠웨이트와의 3차예선 최종전에서 시원하게 승리를 거둔 뒤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다. 에닝요의 귀화 문제로 집중포화를 맞았다. 최 감독은 실리를 외쳤으나, 시선은 싸늘했다. 결국 백기를 들었고, 입을 닫았다. 최강희호의 최종예선 출항은 험난했다.
스위스에서 가진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최강희호는 1대4 참패를 당하면서 불안감을 키웠다. 최 감독은 전화위복을 외쳤다. 최종예선 첫 두 경기서 카타르(4대1)와 레바논(3대0)을 연파하면서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3차전에서는 2대2 무승부에 그치면서 주춤했다. 결과보다 내용 면에서 부진한 경기를 해 질타를 받았다. 한 달 뒤 이란 원정에서는 0대1로 패하면서 최종예선 B조 선두 자리를 내놓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결과도 결과지만 우즈벡전에 이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기내용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애제자 이동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두고 비난의 목소리도 커졌다. 유럽파들의 부진까지 겹치면서 최 감독의 고민은 깊어졌다.
전력 보완과 분위기 반전을 위해 계획했던 두 차례 평가전에서도 낙제점을 받았다. 국내파를 앞세운 호주와의 평가전에서는 무용론 논란 속에 1대2로 패했다. 2013년의 문을 연 지난 2월 크로아티아전에서는 0대4 대패에 그쳤다. 최 감독은 크로아티아전을 대비해 뽑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최종예선 남은 경기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변화보다는 내실을 다지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럽파의 경기력이 살아났고, 국내파들도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기대감은 서서히 오르고 있으나, 여전히 우려는 남아 있다.
미래의 과제, '무색무취 탈피와 공격'
관건은 확실한 색깔이다. 최 감독은 전북 시절 닥공으로 바람몰이를 했으나, A대표팀에서는 제대로 된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 짧은 준비기간과 선수들의 컨디션에 전술적 영향이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단시간 내에 최적의 조합을 찾아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 또한 A대표팀 사령탑의 숙명이다. 조 2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직행 티켓을 잡기 위해서는 오로지 승리만을 생각해야 한다. 8회 연속 본선행 쾌거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확한 상황 판단과 과감한 결단, 동기부여를 끌어내는 일이다.
박주영(셀타비고)을 뺀 상황에서 공격진을 어떻게 조합할 지도 지켜볼 만한 부분이다. 4-2-3-1 포메이션의 꼭짓점에는 이동국과 김신욱(울산)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손흥민(함부르크) 등 자원이 즐비하다. 2선에는 그간 좋은 활약을 펼친 이근호(상주)와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부상 후유증을 털어낸 이청용(볼턴)이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소속팀에서 이들이 보여준 활약에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A대표팀만 오면 작아지는 경기력이 문제다. 최강희호가 만나게 될 4팀 모두 선수비 후역습으로 나설 것이 뻔하다. 이들이 상대 수비를 어느 정도 공략해주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