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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기성용 시대다. 근거 없는, 무조건적인 찬양이 아니다. 잘할 땐 한없이 추켜세우고, 못할 땐 가차 없이 깎아내리며 쉽게 끓고 쉽게 식는 냄비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동안 한국 축구가 주 무기로 삼아온 건 단연 '압박', 이는 조금 더 많이 뛰며 상대의 숨통을 조임으로써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부분을 메우고자 하는 나름의 대응책이었는데, 어쩌면 이 선수야말로 바로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간 굳어져 온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주인공일 수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꺼내본다.
그런데 이 선수의 파트너를 찾는 작업이 아직 완성 단계에 다다르지 못한 것이 문제다. TV 프로그램 마냥 미드필더 1호, 2호, 3호를 세워놓고 짝을 바로 고를 수만 있으면 좋을 텐데, 월드컵 3차 예선부터 최종 예선을 거쳐오는 동안에도 명쾌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그 중 지난해 10월에 열린 최종 예선 이란 원정에 기용된 박종우가 런던 올림픽에서 이어온 호흡을 과시하며 좋은 모습을 보인 편이었는데, "독립투사 오셨다"던 이 선수가 징계 탓에 3월에 열릴 최종 예선 5차전 카타르전과 6월로 잡힌 6차전 레바논전까지 못 뛰는 변수가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호주와의 평가전도 되짚어보자. 당시 최강희 감독은 유럽파들을 배려해 전원 제외한 뒤 국내에서 뛰는 선수들 위주로 라인업을 꾸렸다. 줄곧 활용해오던 4-2-3-1의 정삼각형(△) 대신 4-1-4-1의 역삼각형(▽)의 중원 조합을 구상한 최강희호는 앞선에 황진성-하대성, 그리고 뒤에 박종우를 받쳤으며, 여기에 고명진을 가미하는 전형을 실험했다. 기성용을 보필할 짝을 찾기보다는, K리그에서 날고 있었지만 기성용의 입지를 우선시한 대표팀 스타일과는 달랐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함이었을 텐데, 이번에는 이들을 하나도 불러들이지 않은 채 또 다른 실험을 예고했다.
강팀들과의 연전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으며 리그컵 결승까지 일궈낸 기성용의 소속팀 스완지에서 힌트를 얻을 순 없을까.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뛰고 있는 기성용의 파트너로는 브리턴이 1순위, 아구스틴이 2순위, 그리고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쓰는 느낌이 강한 데 구즈만이 3순위다. 앞선 두 선수는 풍부한 활동량을 통해 상대 공격을 잘라내고, 플랫 4의 1차 방어선 역할을 하는 데 충실해 기성용의 공격 재능을 보다 확실히 살려내는 자원이었다. 반면 공격 욕심을 내곤 했던 데 구즈만과 함께 뛸 때의 기성용은 공-수 분담이 상당히 애매해져 능력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일부분 희생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였다.
2009, 2011 K리그 우승컵을 품으며 닥공이란 브랜드를 키워낸 전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강희 감독 재임 당시 최전방 원톱에 이동국을 배치하고, 1.5선에서 공격을 지원할 세 명의 미드필더를 상당히 공격적인 선수들로 채운 전북은 2009시즌 30경기 62골, 2011시즌 32경기 71골을 퍼부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이 뒤에서 궂은일을 마다치 않았던 김상식-정훈의 헌신적인 플레이다. 공격적인 재능을 살려주기 위해선 수비적인 역할을 해줄 선수가 필수이고, 이런 관점에서 기성용에게도 조금 더 수비적으로 열심히 뛰어줄 짝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전진해서 중거리 슈팅을 쏘고 오는 기성용, 그리고 좌우에서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측면 수비의 뒷공간을 커버해줄 선수 말이다.
완전히 바뀐 중원 명단, 누가 새로운 짝 될까?
기성용 살리기의 방안으로 메인 시스템인 4-2-3-1을 제시했을 때, 가장 큰 관건은 정삼각형의 꼭지점에 누가 들어오느냐다. 이동국-박주영의 공존에 무게를 둔다면 구자철을 아래로 내려 기성용의 짝으로 삼는 방법도 있겠으나, 이는 점점 더 공격적으로 두드러지는 구자철의 성향 탓에 밸런스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소속팀에서처럼 구자철을 측면으로 돌리는 방법을 가정할 때, 이번 소집 명단 중 중원에서 기성용의 짝으로 발을 맞춰볼 만한 자원은 김재성, 신형민 정도. 이만하면 이 진영에 세워볼 만한 거의 모든 자원을 불러봤다는 생각인데, 중동 이적 후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신형민이 얼마나 빛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성용이 없을 때만 활용해왔던 4-1-4-1을 꺼낼 때는 보다 강력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필수다. 앞에 배치된 선수들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지난 호주전에서 그 자리에 세웠던 박종우보다도 수비적으로 헌신해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한 셈. 그렇다면 그 위치엔 기성용보다, 그리고 혹시나 마땅치 않은 중앙 수비 자원을 끌어올려 포어 리베로로 활용하는 것보다 포항에서 해당 포지션을 소화해온 신형민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이렇게 하여 전진 배치될 기성용의 옆엔 구자철이나 이승기, 김재성을 배치해도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다만 이 경우엔 이동국이냐, 박주영이냐의 선택의 갈림길에 서거나 박주영을 측면으로 돌리는 조치가 따라야 한다.
평가전인 만큼 어느 한 시스템, 한 조합, 한 선수에만 얽매이지 않고 여러 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은데, 중원의 조합에도 적잖은 심혈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현지에서 날아온 소식에 의하면 지난 여름 올림픽에 이어 소속팀 스완지의 살인적인 일정을 그대로 소화한 기성용이 피곤해한다는 것. 최강희 감독의 인터뷰 내용으로 보아 출격을 100% 점치긴 어려울 수 있지만, 무리하지 않는 차원에서 몸 상태가 '괜찮다면' 다음 달 하순에 있을 카타르전에 대비한 조합을 찾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물론, '다치지 않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이지만 말이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