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경기 무승 고리 끊은 제주의 원동력은?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2-09-27 21:45



구단의 역량은 위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잘 나갈 때는 좋지 않은 부분이 승리에 가려지기 마련이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승점을 따내고 앞으로 진군한다. 위기에 빠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소한 잘못도 크게 불거진다. 위기가 길어지면 선수단은 물론이고 프런트들과 팬들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위기에서 잘 빠져나와야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다. 방법은 하나다. 선수단과 프런트, 팬들까지 서로를 믿는 것 뿐이다.

박경훈 제주 감독에게는 악몽같은 69일이었다. 7월 21일 전남과의 22라운드 홈경기에서 6대0으로 승리할 때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나흘 뒤 경남 원정에서 1대3으로 질때만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4라운드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3대3으로 비기며 제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월 4일 열린 25라운드 상주 원정경기에서 1대2로 지면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이후 선수단이 급하락세로 돌아섰다. 공격의 중심인 산토스와 수비의 중심 홍정호의 부상 공백이 컸다.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백약이 무효했다. 리그 10경기에서 4무 6패를 기록했다. 차라리 경기력이 좋지 않으면 속이라도 시원했을 것이다. 크게 지고난 뒤 다시 재정비를 하면 됐다. 하지만 경기력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마무리가 묘하게 빗나갔다. 피말리는 시간이 계속됐다.

선수단이 힘들어할 때 프런트들과 팬들이 나섰다. 프런트들은 선수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용기를 북돋우어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한자성어였다. 일주일에 1번, 15분씩 한자성어 공부도 시작했다. 교양을 쌓으면서도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겠다는 의지였다. '임전무퇴(臨戰無退,전쟁에 나가서 후퇴하지 않는다)'와 '즉사필승(卽死必勝,죽을 각오로 반드시 이기자)'이라는 한자성어를 공부했다. 프런트들은 현수막을 만들었다. 이 말들을 넣어 클럽하우스 입구에 붙였다. 선수들은 이 글귀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팬들 역시 힘을 보탰다. 경기 결과가 좋지 않음에도 경기장을 꾸준히 찾았다. 10경기 연속 무승을 거두고 있을 때도 제주의 홈 평균 관중은 6832명이었다. 10경기 무승 행진이 시작되기 전인 6268명보다 더 늘었다. 꾸준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제주 선수단도 힘을 냈다. 27일 포항과의 33라운드 홈경기를 타깃으로 삼았다. 제주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버렸다. 4-2-3-1 전형의 패싱 축구가 아닌 4-4-2 전형을 들고 나왔다. 공격의 핵심 송진형을 스타팅에서 제외했다. 최전방 투톱 서동현과 마르케스에게 볼을 집중시켰다.

장고 끝에 악수가 될 수도 있었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였다. 물러설 곳이 없었다. 파격은 맞아떨어졌다. 틀을 깬 전술이 선수들의 공격 본능을 깨웠다. 후반 20분 서동현, 36분 배일환이 골폭죽을 쏘았다. 포항은 뒤늦게 후반 추가시간 유창현이 한 골을 만회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골을 넣지 못했다. 제주가 10경기 무승 행진을 끊는 순간이었다. 박 감독은 경기 후 "너무 긴 터널을 거쳤다. 선수단과 프런트, 팬들이 모두 하나가 되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주=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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