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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 감독의 믿음에 끝내 눈물 터트린 고요한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2-09-17 16:41 | 최종수정 2012-09-18 08:31


◇최용수 감독과 고요한

24세지만 그는 프로 9년차의 '중년'이다. 2004년 경남 창원 토월중을 중퇴하고 이청용(볼턴)과 함께 FC서울에 입단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꽃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미완의 대기'는 그의 대명사였다.

올시즌이 전환점이었다. 드디어 빛을 발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이 칼을 꺼내들었다. 미드필더인 그를 오른쪽 윙백으로 돌렸다. '고요한 시대'의 닻이 올랐다.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붙박이 주전 자리를 꿰찼다. 리그 선두 질주에 고요한도 한몫 했다. 수비면 수비, 공격이면 공격, 거침없이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빠른 스피드에 상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외부의 시선도 달라졌다. 최강희 A대표팀 감독이 러브콜을 보냈다. 2012년 9월 11일, 친선경기 2경기 출전에 불과한 그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경기에서 주전으로 낙점받았다.

그러나 그를 기다린 것은 시련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미끄러운 잔디를 감안한 축구화를 준비하라고 했다. 고무 스터드로 충분할 것으로 판단했다. 경험 미숙이었고, 현실로 나타났다.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며 그가 맡은 오른쪽이 무너졌다. 서울에서 보인 경기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2대2, 무승부로 끝나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고통의 나날이었다. 시간은 멈춰있지 않았다. 16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부산과의 스플릿 1라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용수 감독은 노심초사했다. A매치 후유증이 길어질 경우 자칫 장기 슬럼프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에는 치명타다.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고요한을 향해 "한 경기 잘해서 단번에 벼락스타 되는 것보다 몇 차례 쓴 경험을 하는 것이 스스로 더 강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잃어버린 7년을 잊지 말자"고 했다. 경기 직전에는 "대표선수답게 뛰어라"고 주문했다.

90분이 흘렀다. 다행히 흔들림은 없었다. 고요한은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2대0 승리를 이끌었다. 서울은 무려 6년간 이어져 온 부산 원정 징크스를 훌훌 털어내며 산뜻하게 첫 테이프를 끊었다. 휘슬이 울린 후 고요한은 그라운드를 떠날 수 없었다. 창원에 거주하는 부모님이 경기장을 찾았다. 원정 온 팬들은 "고요한"을 연호하며 뜨겁게 위로했다. 동료들이 모두 라커룸으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은 그도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굵은 빗줄기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고 있는 한 명을 발견했다. 최용수 감독이었다. 최 감독을 부둥켜안은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힐링 포옹'이었다.

고요한은 "감독님 덕분에 편하게 경기를 뛰었다. 감독님과 동료들, 팬들이 너무 고마웠다. 많은 감동을 받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더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여전히 A매치 후유증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의 믿음이 다시 그를 춤추게 하고 있단다. "다른 것 다 필요없다. 팀이 우승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2010년 우승 때는 경기 출전을 많이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경기수를 많이 채우고 팀에 보탬이 되면서 우승을 하고 싶다."

최용수 감독은 "요한이는 성격이 능동적이고 개성이 강하다. 과감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스타일이다. 프로 9년차지만 주목받지 못한 세월이 길었다. 우즈벡전 한 경기를 가지고 요한이를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되는 집안은 다 이유가 있었다.

시련이 있기에 환희는 더 값지다. 굴곡없는 인생은 없다. 고요한도 그 길을 걷고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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