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세지만 그는 프로 9년차의 '중년'이다. 2004년 경남 창원 토월중을 중퇴하고 이청용(볼턴)과 함께 FC서울에 입단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꽃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미완의 대기'는 그의 대명사였다.
고통의 나날이었다. 시간은 멈춰있지 않았다. 16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부산과의 스플릿 1라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용수 감독은 노심초사했다. A매치 후유증이 길어질 경우 자칫 장기 슬럼프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에는 치명타다.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고요한을 향해 "한 경기 잘해서 단번에 벼락스타 되는 것보다 몇 차례 쓴 경험을 하는 것이 스스로 더 강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잃어버린 7년을 잊지 말자"고 했다. 경기 직전에는 "대표선수답게 뛰어라"고 주문했다.
90분이 흘렀다. 다행히 흔들림은 없었다. 고요한은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2대0 승리를 이끌었다. 서울은 무려 6년간 이어져 온 부산 원정 징크스를 훌훌 털어내며 산뜻하게 첫 테이프를 끊었다. 휘슬이 울린 후 고요한은 그라운드를 떠날 수 없었다. 창원에 거주하는 부모님이 경기장을 찾았다. 원정 온 팬들은 "고요한"을 연호하며 뜨겁게 위로했다. 동료들이 모두 라커룸으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은 그도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굵은 빗줄기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고 있는 한 명을 발견했다. 최용수 감독이었다. 최 감독을 부둥켜안은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힐링 포옹'이었다.
최용수 감독은 "요한이는 성격이 능동적이고 개성이 강하다. 과감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스타일이다. 프로 9년차지만 주목받지 못한 세월이 길었다. 우즈벡전 한 경기를 가지고 요한이를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되는 집안은 다 이유가 있었다.
시련이 있기에 환희는 더 값지다. 굴곡없는 인생은 없다. 고요한도 그 길을 걷고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