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끈 달아오른 도쿄, 한-일 축구전쟁의 현장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2-08-30 19:34



최근 몇 년간 도쿄 국립경기장은 조용했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장은 거대했지만, 노후했다. 도쿄 인근 사이타마와 요코하마에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러낸 대규모 경기장이 들어서면서 빅매치 개최 빈도수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한-일전이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것은 2010년 2월 3일 동아시아선수권(3대1 한국승)이 마지막이었다.


2년여 만에 다시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한-일전이 치러졌다. 무대는 2012년 여자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 8강전이다.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 개최권을 넘겨 받은 일본은 이번 대회 흥행에 애를 먹었다. 26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일본-스위스 간의 본선 조별리그 A조 최종전(4대0 일본승)에 1만6914명의 최다관중 기록이 나왔다. 여자 청소년 대회에 들어온 관중 치고는 많은 숫자지만, 적자운영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30일 이런 고민이 모두 풀렸다. 도쿄국립경기장에는 경기시작 세 시간 전부터 관중들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경기 임박 시점에는 절반 가까운 좌석이 채워졌다. 입장권 판매처는 남자 A매치를 방불케 할 만큼 긴 줄이 늘어섰다. 경기장 내에 위치한 일본 대표팀 기념품도 일찌감치 매진됐다. 세계 최고의 더비 중 하나로 꼽히는 한-일전은 또 한 번 양국의 흥행 보증수표임이 증명됐다. 독도와 일왕 사죄 논란으로 민감해진 양국 정서도 일정 부분 투영이 됐다.


뜨거운 감자였던 욱일승천기도 눈에 띄였다. 일본 서포터스석 쪽에서 양팀 입장 과정에서 욱일승천기를 요란하게 흔드는 한 팬이 목격됐다. 그러나 이후 자취를 감췄다. 정치적 퍼포먼스를 엄격하게 금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국제축구연맹(FIFA)의 의지가 일정 부분 반영된 모습이다. 일본 경찰도 경기장 입장부터 철저하게 소지품 검색을 하면서 만일에 일어날 지도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라혀는 모습을 보였다. 일장기와 자극적인 문구로 요란하게 치장한 검은색 벤을 몰고 확성기로 일본군가를 크게 틀어놓은 극우단체가 이따금 도로를 질주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이 차분하게 경기장에 입장해 경기 자체를 즐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숙명의 라이벌' 간의 축구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도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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