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만의 한-일전, 일본이 들끓고 있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2-08-28 00:08 | 최종수정 2012-08-28 08:45


불과 보름 전만 해도 일본 축구계는 울상이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이후 44년 만의 영광 재현을 부르짖으며 나섰던 한국전. 결과는 0대2 완패였다. 남자 국제대회 결선 토너먼트 사상 첫 맞대결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진 경기에서 패한 충격은 꽤 컸다. 동메달을 놓친 것보다 한국에 완패한 것이 더 분개했다. 일부 과격한 일본 팬들은 홍명보호가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으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것을 빗대어 일본 올림픽팀 선수들에게 '너희가 대신 군대에 가라'고 일갈할 정도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뒤 내심 바랐던 한국전 승리의 꿈이 무참히 깨지자, '역적' 취급을 했다.

숙명, 말 그대로 피할 수 없는 인연이다. 한국과 일본이 다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다. 2012년 일본여자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 8강전이 결전 무대다. 한국이 본선 조별리그 B조 2위, 일본은 A조 1위로 8강에 올랐다. 보름 만에 다시 한-일전이 성사된 셈이다. 숙연했던 일본이 다시 떠들썩 해졌다. 일본 언론에선 다소 과격해 보이는 '복수'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의외다. 그동안 일본 여자 축구는 한국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랭킹 3위인 일본에 한국(15위)은 눈 밖이었다. 2011년 독일여자월드컵 우승, 런던올림픽 여자 축구 은메달 등 화려한 성과를 올렸으니 충분히 가질 만한 자신감이다. 지난해 열린 17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 20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과 런던올림픽 예선에서 한국에 전승을 거뒀다. 이번 대회에도 일본이 가볍게 본선 출전권을 따낸 반면,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이 일본에 개최권을 반납하면서 남은 한 장의 본선 티켓을 간신히 확보하면서 출전에 성공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일본이 한국전에 열을 올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다. 런던올림픽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대세였던 일본 사회가 최근 정치권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진 우경화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도 무관치 않다. 일본축구협회(JFA)가 본선 개최 전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반입금지를 결정했다가 집중비난을 받은 뒤 입장을 바꾼 것은 단적인 예다.

일본 선수들도 한국이 8강 상대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기다렸다는 듯이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주장 후지타 노조미(20·우라와)는 일본 스포츠지 산케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같은 숙소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한국선수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빨리 문을 닫으려고 하더라"면서 "한국 수비수들은 드리블 한 두 번이면 충분히 제칠 수 있다"고 큰소리 쳤다. 미드필더 시바타 하나에(20·우라와) 역시 한국전을 두고 "개인적으로 쉽다고 생각한다. 한국 선수들은 드리블로 제치기 쉽다"고 했다. 스포츠호치는 미드필더 요코야마 구미(19·오카야마)가 "남자 올림픽팀이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에 패했다.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꼭 이기고 싶다"고 한 다짐을 전하면서 '다양한 인연이 있는 한국에 대량 득점의 기세를 타고 덮칠 것'이라는 자극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일본축구협회가 오히려 조심스런 모습이다. 다이니 구니야 일본축구협회장은 니칸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한-일전도 어차피 한 경기일 뿐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 언론과 관중들이 많이 경기장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8강전에 나서는 한국 선수단은 그라운드 밖의 적과도 싸워야 한다. 일본 축구의 심장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리는 한-일전인 만큼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입이 허가된 욱일승천기를 앞세운 일본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야유는 어린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 될 만하다.

하지만 일본이 잊은 것이 있다. 이번 대회에 나선 한국 선수 대부분은 '극일(克日·일본을 이긴다는 뜻)의 주역이었다. 2010년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렸던 여자청소년월드컵(17세 이하) 결승전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할 당시 멤버들이 포진해 있다. 들끓는 일본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능력은 충분하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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