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잠비아전, 등번호 22번 김형범을 지켜보자.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2-08-15 16:33


김형범 [사진제공=대전시티즌]

잠비아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소집된 최강희호 3기. 전원 K리거로 구성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과 해당 리그 개막을 앞둔 해외파 선수들을 무리하게 불러들일 수 없었던 최강희호 감독의 선택이었다. 이미 K리그에서 날아다니며 능력이 검증된 선수들에게 태극마크 테스트의 기회를 제공한 잠비아전, "오빤 K리그 스타일"뿐 아니라 "오빤 대표팀 스타일"이라고도 당당히 외치길 꿈꾸는 18명의 선수가 여기 있다. 이 중 어떤 선수가 가장 눈에 띄는가. 개인적으론 단연 김형범이다. 대체 얼마 만인가.

2006년 전북의 측면 날개로 명경기를 줄줄이 연출해내며 ACL 우승까지 견인했던 이 선수에 대한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참 야속하게도 더욱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던 때에 무릎이 이상 신호를 보냈고, 결국 2007년 그는 고작 6경기밖에 뛰질 못했다. 그 와중에도 2골을 넣곤 했지만, 그에 대한 기대치를 채우기엔 한참 부족했고, 소속팀 전북 또한 정규리그 8위로 6강 PO 문턱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그랬던 그가 이듬해 화려한 복귀에 성공했다. 2006년에 비해 풀타임 소화는 줄어들었지만, 그의 플레이는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2년 전 그때처럼 거칠 게 없었던 그는 7골 4도움으로 팀을 6강 PO에 올려놓았고, 그 해 10월엔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서 데뷔전까지 치렀다. 이 페이스로만 달릴 수 있다면 2010년 남아공을 겨냥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후반기 대반전을 일궈내며 6강행 막차를 탄 전북 최강희 감독은 3위 성남과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4분, 에이스 김형범을 투입시켰다. 하지만 그가 뛴 공식 기록은 12분. 현장에서 지켜보기에 성남의 장학영이 무리한 맨마킹을 시도한 것도 아니었는데 벤치 바로 앞에서 쓰러지더니 결국 실려 나가고 말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잔디에 걸려 넘어진 게 화근이었다.

오뚝이 같았다. 2009년 7월, 수원을 상대로 드디어 복귀 무대에 섰다. 지독한 재활 끝에 다시 선 K리그 무대,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에게 허락된 건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뿐이었다. 오른쪽 코너 플래그 앞 지점에서 곽희주와 경합하던 김형범은 비가 오는 그라운드에서 미끄러졌고, 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그는 이내 땅을 치기 시작했다. 이번에 빠진 어두컴컴한 부상의 터널엔 과연 끝이 있기나 한 걸까 싶었다. 전북이 2009, 2011 K리그 우승, 2011 ACL 준우승을 비롯해 '닥공'이라는 브랜드로 아시아를 호령하고 있을 동안 그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플레이의 임팩트 만큼이나 부상의 임팩트도 어마어마하게 컸던 게 김형범의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지난해 9월엔 은퇴까지 결심했다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대전 유상철 감독. 임대로 적을 옮긴 대전에서 그는 거짓말처럼 또 한 번의 전성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올 시즌 20경기 4골 7도움, 아직 2012 시즌이 석 달도 더 남았지만, 그가 뛴 경기 수는 데뷔 이래 9년 중 네 번째로 많으며(2008년 31경기, 2004년 29경기, 2006년 28경기), 공격 포인트는 본인의 최다 기록 11개(2006년 7골 4도움 11개, 2008년 7골 4도움 11개)에까지 올라섰다. 그럼에도 그가 정한 목표는 단 하나였다. 대표팀 복귀도 아니었고, 더 많은 골과 도움도 아니었다. 그저 '부상 없는 시즌을 보내는 것'.

어쩌면 최근 몇 년간 녹색의 그라운드보다 차디찬 수술대와 재활 센터가 더 익숙했을 선수, 그랬던 그가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참고 또 참더니 드디어 옛 스승 최강희 감독과의 재회로 빛을 보았다. 오늘 밤 잠비아전, 그의 날카로운 킥이 다시 한 번 팬들을 홀릴 수 있을까. 등번호 22번 김형범을 지켜보자.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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