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호곤 감독 통산 100승 달성, '福장'의 우여곡절 감독 인생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2-08-09 18:26


김호곤 울산 감독. 사진제공=울산 현대

'덕장(德將), 지장(智將), 용장(勇將)….' 세상에 많고 많은 장수들 중 으뜸은 단연 '복장(福將)'이다.

김호곤 울산 현대 감독(61)은 유난히 행운이 따르는 복장이다. 2004년 한국축구 사상 첫 올림픽 8강 신화를 이룩한 지도자다. K-리그에선 역대 12번째 통산 100승을 달성한 감독 대열에도 올랐다. 8일 성남을 1대0으로 꺾으면서 대기록을 썼다. 김 감독은 총 241경기만에 통산 100승을 달성, 역대 세 번째로 최소 경기 100승을 달성했다. 차경복·최강희 전 감독이 224경기로 공동 1위다. 김 감독은 이같은 행운을 잡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김 감독은 울산의 산 증인이다. 1983년 창단한 울산의 코치로 지도자의 첫 발을 뗐다. 현역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도자 생활도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1985년 A대표팀 코치에 발탁된 뒤 이듬해 코치로 멕시코월드컵를 경험했다. 이후에는 올림픽 코치로 활약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코치로 치렀다. 당시 '선수 장악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0여년의 코치 생활은 1992년, 마침표를 찍었다. 김 감독은 모교인 연세대의 지휘봉을 잡았다. 8년간 연세대의 부흥을 이끌며 인재 양성에 힘썼다.

프로팀 감독의 첫 지휘봉은 2000년 부산 아이콘스(현 부산 아이파크)에서 잡았다. 2000년 3월 19일은 김 감독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프로 첫 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대한화재컵에서 대전을 3대1로 꺾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녹록지 않았다. 2000년(13승10무14패)과 2001년(16승13무9패)를 기록, 준수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2002년 8승8무15패로 성적이 저조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다시 반전의 기회를 맞이했다. 2002년 11월, 기술위원회는 대표팀의 이원화를 결정하면서 김호곤 감독에게 올림픽팀을 맡겼다. 당시 프로에서 성적이 나쁜 지도자를 올림픽팀 감독으로 뽑았다는 비난 여론이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성적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겠노라'는 약속을 지켰다. 54년 만의 올림픽 8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탁월한 지도력을 검증받았다.

김 감독은 잠시 축구 현장을 떠나기도 했다. 2005~2008년 12월까지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맡아 행정가로서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곳은 역시 그라운드였다. 그러나 첫 시즌은 시련이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탈락을 맛봤다. 리그에서도 재미없고 특색 없는 '수비축구'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뚝심있게 밀고 나갔다. 2011년 방점을 찍었다. 강력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상대 허점을 노리는 '철퇴축구'를 탄생시켰다. 더불어 '철퇴왕'이란 걸출한 별명도 얻었다. 컵대회 우승과 함께 정규리그 준우승으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냈다.


김 감독의 묘수는 올시즌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유일하게 8강에 올라있다. 정규리그에서도 3위, FA컵에서도 4강에 진출했다. 이 와중에 K-리그 100승 달성은 보너스일 뿐이다. 진정한 목표는 K-리그 사상 첫 트레블 달성이다. 김 감독의 꿈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