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김신욱-광주 유종현, 1m96 큰 키처럼 닮은 운명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2-04-06 02:33 | 최종수정 2012-04-06 08:30


3일 포항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질주하는 김신욱. 사진 제공=울산 현대

2001년 과천 문원중과 고양 백마중의 경기. 키가 1m92인 백마중 공격수는 같은 신장을 가진 문원중의 수비수를 뚫어야 했다. 두 거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둘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유명했다. 또래 선수들보다 무려 20~30㎝가 더 컸기 때문이다. 서로의 존재는 파악하고 있었다. '너처럼 키가 큰 선수가 다른 학교에도 있다'라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동질감을 느꼈다. '동갑내기 절친' 김신욱(울산)과 유종현(광주·이상 24)의 스토리다.

고교시절 둘의 성장세는 비슷했다. 키가 1m94까지 자랐다. 그러나 대회 때마다 만나면 머쓱하기만 했다. 학교가 달랐고, 소통의 계기도 없었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사이가 가까워졌다. 어느새 둘의 키는 2㎝가 더 자라있었다. 중앙대(김신욱)와 건국대(유종현)의 U-리그가 있는 날이면 둘의 관심은 상대의 신장과 몸무게에 쏠렸다.

김신욱은 중앙대 2학년을 마치고 2009년 울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재학 시절 중앙 수비수였지만, 수준급 수비수들이 즐비한 울산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래서 김 감독은 김신욱에게 공격수 전향을 권했다. 장신임에도 발재간이 좋고 스피드가 탁월한 덕분이었다.

김신욱은 메신저를 통해 유종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공격수로 전향했으니 공격에 대한 부분을 조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유종현은 "신욱이가 프로에 가자마자 공격수로 전향했다며 '공격에 대해 알려달라'고 그러더라. 그런데 당시 신욱이는 프로선수였고, 난 아마선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조언했으면 부끄러웠을 것 같다. 신욱이는 공격수로 바꾼 뒤 태극마크도 달아봤고 잘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광주FC 장신 수비수 유종현. 사진제공=광주FC
큰 키처럼 비슷한 운명을 타고난 걸까. 2년 뒤 이번엔 유종현이 프로 선수가 됐다. 2011년 건국대 졸업을 앞두고 창단팀 광주에 우선지명됐다. 그런데 재학시절 스트라이커였던 유종현은 프로가 되자마자 수비수로 전향했다. 최만희 광주 감독의 권유때문이었다. 김신욱과 정반대로 뒤바뀐 운명이었다. 유종현은 대학교 1학년 때 잠시 수비수 교육을 받아봤지만, 포지션 변경은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유종현은 "아직도 많이 배우는 중이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개될 때 좀 더 부드러운 패스를 해야하는데 아직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 때까지 유종현이 뚫고 김신욱이 막았다면, 프로에선 김신욱이 뚫고 유종현이 막는 입장이 됐다. 유종현은 공격수 김신욱에 대해 지난시즌보다 올시즌이 더 무섭다고 평가했다. "신욱이의 공격 능력이 지난 시즌보다 향상된 것 같다. 좀 더 과감해진 모습이다. 헤딩볼을 다툴 때 소극적이었는데 지금은 과감하게 달려든다. 욕심도 많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프로가 된 뒤 둘의 관심사는 이제 키와 몸무게가 아니다. 외모로 바뀌었다. 서로 상대방이 못생겼다고 놀려댄단다. 유종현은 "내가 신욱이에게 '왜 이렇게 못 생겼냐'고 놀리면 신욱이도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나한테 할 수 있냐'며 맞불을 놓는다"고 말했다.

둘은 서로에게 힘이되는 벗이다. 특히 유종현은 김신욱과 함께 대표선수로 활약하는 꿈을 꾼다. 유종현은 "키가 큰 신욱와 내가 공격과 수비에 같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고 했다.


둘은 오는 8일 올 시즌 처음으로 충돌한다. 무대는 광주월드컵경기장이다. 지난시즌은 김신욱의 압승이었다. 울산은 컵대회를 포함해 2승1무로 광주에게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김신욱은 지난해 5월 11일 컵대회 조별리그에서 2골을 터뜨려 1골을 넣은 유종현에 판정승을 거뒀다. 그래서 유종현은 이를 악문다. 이번만큼은 김신욱에게 골을 허용하고 싶지 않단다. 유종현은 "친구에게 골을 내주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고 웃었다. 일단 주심이 경기 시작 휘슬을 불면 친구 사이는 잠시 접어둔다. 유종현은 "내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신욱이가 '너무 세게 하는 것 아니냐'며 불평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등을 두들겨주고 악수를 하는 둘이다. 두 거구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는 광주-울산전을 보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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