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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31·맨유).
박지성은 가장 먼저 부모님의 존재를 묻자 '희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 내가 여기에 있게 만들어 주신 분들이다. 누구보다도 나에게 큰 영향을 주셨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박지성의 말대로 부친 박성종씨와 모친 장명자씨는 자식의 앞길을 위해 '희생'이라는 단어를 몸소 실천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아버지가 박지성의 몸보신을 위해 개구리를 잡아다 먹인 얘기는 이제 너무 유명하다. 기차를 타고 올라오다가 잡은 개구리를 담아둔 포대가 풀어지면서 한바탕 난리가 난 해프닝도 있었다. 박지성은 "나와 다른 환경에 처한 아들이 있으셨다면, 편안하게 한국에서 사셔도 되셨을 텐데. 계속 한국과 영국을 오가셔야 한다. 전혀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오로지 나를 돌봐주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부모님으로서 희생하시는 부분이다. 그런 것들이 가장 미안하고 고마워 하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김희태 전 명지대 감독은 박지성이 '아시아축구의 별'이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준 은사다. 박지성은 수원공고에서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축구선수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근력과 지구력이 부족했다. 근력이 붙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월부터다. 호주에서 아주대,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명지대, 올림픽대표팀과 함께 실시한 합동 전지훈련이 약이 됐다.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2월 올림픽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아 다섯 명을 제치고 골까지 넣는 등 매경기 활약을 펼쳤다. 허정무 감독이 올림픽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시절 올림픽대표팀 연습생으로 발탁됐던 것도 김 감독의 도움이 컸다. 박지성은 "내가 원하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내보내 줘 허정무 감독님 앞에서 기량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내 꿈을 이루는데 기회를 제공해주신 분이다"고 회상했다.
③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박지성은 '방장'과 '방졸'로 만났다. 박지성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당시 한방에서 동고동락했다. 박지성에게 홍 코치는 하늘이었다. 또 걸어다니는 교과서였다. 박지성은 자서전에서 '20대 초반 롤 모델은 홍명보 선배였다'고 밝힌 바 있다. 홍 감독에게 여러 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특유의 인터뷰 화법도 이 기간에 홍 감독에게 전수받았다. 박지성은 "다른 어떤 것보다 본인이 신뢰가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카리스마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말만이 아니라 직접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모습, 후배들을 대하는 모습 그리고 팀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봤을 때 믿음이 가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④허정무 감독
묘한 인연이다. 박지성에게 태극마크를 선물한 것은 허정무 감독이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멤버로 발탁했다. 박지성은 "올림픽대표 때는 전혀 재미난 에피소드가 없었다. 나는 막내였고, 당시에는 감독님과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 말없이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10년이 흘렀다. 허 감독은 박지성에게 A대표팀 주장 완장을 선물했다. 허 감독은 2008년 10월 당시 부진하던 김남일을 명단에서 뺀 뒤 코치진에 장기적인 주장 적임자를 물었다. 이영표 이운재가 후보에 올랐다. 사실 허 감독은 박지성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며칠 뒤 코치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 허 감독은 이운재 이영표 이정수 염기훈 김정우 박지성 등 선참 여섯명을 불렀다. 허 감독의 전략은 선수들이 직접 박지성의 주장을 추천하는 것이었다. 이영표가 거절한 뒤 예상대로 선수들이 박지성을 추천했다. 당시 박지성도 사양하지 않았다. 그 전에 미리 언질을 해줬기 때문이다.
⑤정대세
"박지성 선수를 평생 모시면서 살 것입니다." 지난해 6월 베트남 자선 축구대회 때 정대세가 한 말이다. 박지성은 '우상'이었다. 세계 최고 구단 중 하나인 맨유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에 반했단다. 또 은혜를 입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한국-이란의 최종전에서 박지성은 0-1로 뒤진 후반 36분 왼발 슛으로 천금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 골은 월드컵 본선 진출의 갈림길에 서 있던 북한에게 본선행 직행 티켓을 안겨준 골이었다. 때문에 정대세는 부상 재활 중임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의 자선경기에 출전하는 열의를 보였다. 박지성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지는 않는다. 정대세가 내 앞이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고 들었는데 언론에서 그렇게 만든 것 뿐이다"며 웃음을 보였다.
⑥이영표
이영표는 박지성에게 한결같은 형이다. 2002년부터 박지성과 동선이 일치했다. PSV에인트호벤부터 200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까지 박지성과 궤를 같이 했다. 특히 A대표팀에선 항상 박지성 옆에 있었다. 박지성은 "영표 형과는 가끔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영표 형은 내가 대표팀에 들어갔을 때부터 나올 때까지 언제나 같이 있었다. 선수가 바뀌고 은퇴를 하지만 내가 대표팀에 들어가서 전혀 변하지 않은 사람은 영표 형 밖에 없는 것 같다. 대표팀을 이탈하거나 누구에 의해 뽑히지 않고, 대표팀에서 제외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⑦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
박지성은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을 '보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의 보스다. 퍼거슨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눈다. 문화적 차이다. 박지성은 "한국에서는 나이에 대한 문화가 영국보다 강하다. 때문에 유럽보다 소통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한국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문화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박지성은 "한국도 나름대로의 문화로 선수들을 운영한다. 여기도 여기 나름대로 선수단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박지성도 라커룸에서 퍼거슨의 '헤어드라이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퍼거슨이 화가 나면 헤어드라이기의 뜨거운 바람처럼 무시무시하게 선수를 다그치는 데서 나온 별명이다. 그러나 박지성은 "운동을 할 때는 전혀 무섭지 않다. 선수들이랑 장난치기도 한다. 운동을 할 때 한번도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퍼거슨이 26년간 맨유의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던 비결로 그만의 특별함을 꼽았다. "특별한 것이 없었다면 우승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이 팀에서 누가 가장 중요한 존재인지 선수한테 일깨워준다. 이어 선수들이 개인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보다 팀을 위해서 희생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렇게 선수들을 관리하는 부분에서 최고라는 게 아마 팀을 지금까지 이끌어 가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스타 선수들을 데리고 있어도 문제없이 선수들을 이끌고 갈 수 있는 비결인 것 같다."
⑧거스 히딩크
박지성에게 히딩크의 존재는 어느 누구보다도 특별하다. 박지성은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에서 "히딩크 감독은 내 속에 숨어 있던 잠재력을 현실로 끌어내 주셨다"면서 히딩크 감독과의 만남이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은 고국에서 열렸기 때문에 얼마나 큰 대회인지 확실하게 실감하지 못했다. 그냥 히딩크 감독님이 뛰라는대로 뛰었다"고 했다. 에인트호벤에서 자신이 슬럼프를 겪을 때도 항상 믿음을 잃지 않았던 히딩크였다. 박지성은 "계속해서 나를 격려해줬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로 만들어주신 분이다"며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⑨파트리스 에브라
박지성은 2006년부터 외롭지 않았다. '단짝'을 찾았기 때문이다. 동갑내기 에브라였다. 에브라의 장난기에 박지성도 실소를 머금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박지성은 "웃기긴 웃기는 친구이다.(웃음) 국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초토화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 팀 내 가장 재미있는 친구다"라며 재미난 일화도 소개했다. 박지성은 "경기가 끝난 뒤 에브라가 나보다 먼저 나와 한국 취재진을 맞았다. 에브라는 나를 찾는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때밀이로 몸을 씻는 시늉을 하며 목욕을 하고 있다는 사인을 보냈단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때밀이 수건을 한번도 가지고 온 적이 없다"고 웃었다.
⑩정경호
한국에서 박지성의 단짝은 정경호(대전)다. 박지성은 자서전에서 '평생 영원히 같이 할 친구'로 정경호를 꼽았다. 2007년 정경호 결혼식에서 깜짝 들러리를 서면서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어렸을 때부터 알긴 했지만 대표팀에 발탁된 뒤 더욱 친해졌다. 마음이 통하고, 편하고…, 말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어 "그런 걸 떠나 서로 너무 잘 되기만 원하는 사이다. 제가 봐도 우리 사이가 보기좋다"고 덧붙였다. 박지성은 재미난 비하인드스토리를 전해줬다. "팬들이 팬레터를 정경호한테 쓰는 이유가 있다. 정경호한테 팬레터를 써서 처음 시작은 '정경호 선수 훌륭한 선수이다. 팬이다'라고 한 뒤 마지막에는 '박지성을 소개시켜 달라'고 한다. 그런 팬레터를 경호가 받는다는 것이 웃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맨체스터(영국)=이 산 유럽축구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