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은 27일 지난해 대한축구협회가 2억여원을 들여 외부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작성된 중간보고용 '한국축구 중장기 발전 프로젝트' 리포트를 단독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축구가 발전하기 위해 축구협회가 어떻게 조직을 바꾸고 시스템을 재정립해야 하는 지에 대한 현실태와 발전 방향이 총 93페이지 분량으로 정리돼 있었다. 의뢰인(축구협회장)에게 중간보고된 자료이지만 외부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축구협회와 한국축구는 더욱 건강한 발전을 위해 칼을 대야 할 부분이 많았다.
협회가 지난해 6개월에 걸쳐 실시했던 컨설팅 작업은 두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행했다. A업체는 내부회계 시스템의 문제점을 진단했고, B업체는 축구 전반의 발전을 위한 대안 마련에 초점을 맞췄다.
힘을 나눠 주기가 싫었다
또 현재 협회 산하 8개 연맹과 16개 시도축구협회의 업무가 큰 부분에서 중복된다고 분석했다. 대회 진행이나 심판 육성 부분이 겹친다. 따라서 선진축구 시스템으로 가기 위해선 산하 연맹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시도축구협회의 역량을 높여주는 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협회 자체의 권한은 지금 보다 크게 줄게 된다. 지방자치시대에 걸맞게 시도축구협회가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도 있다.
현 축구 이사회에서도 축구인의 비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마케팅, 인사 등의 경영 전문가와 행정 전문가들이 좀더 많이 이사회 멤버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전체 이사 28명 중 축구인들이 16명으로 57%를 차지하고 있다. 이사회는 사실상의 축구 행정 전반을 결정하는 의결 기관이다. 이사회 구성에 손을 대지 않은 이상 아무리 협회 직원들이 건설적인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위에서 묵살하면 행정은 바뀔 수가 없다.
또 최근 회계 직원의 법인 카드를 통한 횡령 사건이 나올 수밖에 없는 내부회계 시스템 문제도 지적됐다. 최근 횡령 혐의로 권고 사직 당한 협회 직원은 혼자 회계와 재무를 같이 처리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의 경우는 다르다. 회계관리사와 재무관리사를 따라 둔다. 또 재무부장과 지출부장이 나눠져 있다. 따라서 돈의 흐름을 한 눈에 관리할 수 있고, 상호 체크를 통해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을 줄여 놓았다.
아픈 내용이 너무 많아서 외면당했다
현 집행부가 보기에 이런 내용들이 대의원이나 외부로 알려질 경우 결코 좋을 게 없었다. 한국축구는 지난해 악재가 겹쳤다. K-리그에선 사상 초유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또 협회 수뇌부는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면서 일처리 미흡으로 축구팬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조중연 회장의 임기는 내년 1월까지다. 올해는 축구판이 선거 분위기로 휩싸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대의원들에게 현 집행부가 독이 될만한 보고서를 보여줄 리 없었다.
이 중간 보고서는 A매치 경기 수익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2005년 A매치 수입금은 85억여원이었고 5년이 지난 2010년에는 37억여원으로 약 50억원이 감소했다. 또 앞으로 월드컵 예선 및 본선 경기 시드 배정에서 FIFA 랭킹이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따라서 한국의 FIFA랭킹(현재 30위) 관리 차원에서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과 친선경기를 갖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A매치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이면 뭐하러 외부 컨설팅을 하나
외부 컨설팅은 조직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협회는 돈을 투자해 건설적인 보고서를 받고도 수용하지 않았다.
현 협회 집행부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축구의 먼 미래 보다 눈앞의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외부인들의 날카로운 지적이 싫었다. 집행부의 마인드가 열리지 않고는 아무리 좋은 외부의 목소리가 있어도 무용지물인 셈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