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기술위 말고 조중연 회장이 나서라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1-12-21 18:21


21일 환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선임을 발표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해체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축구 A대표팀 감독 선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도 전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조중연 회장을 중심으로 한 축구협회 수뇌부의 결정을 충실히 수행하는 꼭두각시 역할이라면 존재의 이유가 없다.

황보관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21일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을 대표팀 감독에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외국인 감독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더니, 결국 조광래 감독 경질 직후 차기 감독 1순위로 거론됐던 최 감독으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기술위는 이렇다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조광래 감독 경질 결정 과정에서도 배제됐던 황보 기술위원장은 신임 최강희 감독 선임에서도 또한번 결정내용을 발표하는 얼굴 마담에 그쳤다. 기술위원들은 기술위 개최 하루 전까지도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축구협회가 대표팀 감독 선임에 관한 상당 부분을 기술위의 재량에 맡겼다고 했지만 기술위는 허수아비였다.

조중연 회장이 나서라

조광래 감독을 경질한 것도 그렇고, 최강희 감독 선임 또한 조 회장이 결정했다. 기술위원장과 기술위는 존재감이 없었다. 지난 8일 조광래 감독 경질이 공식 발표된 후 선임된 기술위원들은 새 감독에 관해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지난 12일 열린 기술위에서 후임 감독 선임건에 대한 논의가 10분 정도 이뤄졌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사안이 약식으로 슬쩍 지나간 것이다.

기술위원들이 모여 차기 사령탑 선임을 논의하지만 결국 축구협회 수뇌부의 결정에 따르는 모양새다. 이런 식이라면 차후에 조 회장이 책임을 지고 직접 감독을 결정하는 게 낫다. 기술위원장이나 기술위의 뒤에 숨지 말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


21일 황보관 대한축구협회기술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지난해 7월 조광래 감독을 선임한 것도 조 회장이다. 그런데 한국축구의 수장 격인 조 회장은 조 감독을 경질하면서도 직접 나서지 않고 김진국 축구협회 전무와 황보 위원장을 내세웠다. 당초 참석하겠다고 말했다가 이후 갑자기 불참을 결정했다.


이후 따로 조 감독 경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자리를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20일 축구협회 시상식에서 "조 감독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하다"고 뒤늦게 말한 게 전부다.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대표팀 성적이 협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수도없이 말해 왔다. 대표팀이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에 가지 못하면 축구협회 직원을 절반 이상 줄여야하는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고 경질한 고위 관계자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협회장이 감독 선임을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기술위는 새로운 역할을 맡아라

축구협회 정관 제50조(기술위원회) 1항을 보면 '기술위는 선수와 지도자의 양성, 각급 국가대표급 지도자와 선수의 선발, 축구 기술발전 및 교육을 목적으로 설치한다'고 돼 있다. 기술위는 대표팀 감독 후보를 면밀하게 체크해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기술위는 제3자였다. 황보 위원장은 축구협회 수뇌부의 결정을 발표하는 역할에 그쳤다.

지금처럼 축구협회 수뇌부의 뜻에 따라 대표팀 감독 선임이 결정된다면 기술위는 필요없다. 권한도 없고, 능력도 없는 기술위의 고유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축구협회 기술국장을 겸하고 있는 황보 위원장을 제외하면 안익수 부산 아이파크 감독과 하석주 아주대 감독 등 기술위원 7명 모두 각자의 본업이 따로 있다. 소속팀에 신경을 쓰다가 기술위가 열릴 때만 모인다.

현 상황에서는 기술위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대표팀 감독 후보를 추천할 수밖에 없다. 각자의 직분이 따로 있으니 해외로 날아가 해외 지도자를 만날 수 없다. 기껏해야 에이전트를 통해 제출한 해외 지도자의 서류를 보는 정도다.

이런 식이라면 축구협회 정관을 수정해서라도 기술위에 손을 대야 한다. 기술위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겸직이 아닌 상근 기술위원을 두고 대표팀을 지원하게 해야 한다. 해외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를 체크하고, 세계 축구의 흐름을 분석해 실질적으로 대표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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