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표팀 외국인 감독, 히딩크 아이러니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1-12-19 13:40 | 최종수정 2011-12-19 13:40


대한축구협회는 A대표팀 새 사령탑 선임에 한 가지 가이드 라인만 제시한 상태다. 외국인 감독 영입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생각하는 외국인 감독은 축구 선진국 출신을 뜻한다. 유럽 또는 남미다. 아시아권 출신은 분명 아니다.

'축구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이지만 오려는 축구 선진국 지도자는 분명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성공이 큰 이유중 하나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와 한국 팬들은 '아무나'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또한 히딩크 감독 때문이다.

한국축구에는 '히딩크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외국 지도자들은 히딩크처럼 되고자, 히딩크를 염두에 두고 한국 대표팀에 선뜻 노크한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오면 끊임없이 히딩크와 비교 선상에 올라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히딩크 때문에 오고, 히딩크 때문에 가는 셈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 놓았다.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이후 '히딩크 매직'은 고유 단어처럼 쓰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 16강(호주), 유로 2008 4강(러시아)으로 이어졌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4강(네덜란드) 이후 내리막을 걷던 히딩크의 터닝 포인트는 단연 한국에서의 월드컵 4강 추억이다. 이후 세계 최고 명장 중 한명이 됐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과 딕 아드보카트 감독 같은 인지도 있는 지도자들이 한국을 찾은 데는 히딩크 감독의 영향이 컸다. 동양적인 정서로 지도자에 순종하며 최선을 다하는 한국 선수들을 데리고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이는 축구지도자 이력서에 큰 플러스가 된다.

하지만 반대급부도 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원정 16강을 이끈 뒤 스스로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난 허정무 인천 감독은 외국인 지도자 영입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히딩크 감독 이후 외국인 지도자들이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된 적 없다는 것이 허 감독의 평소 지론이다.

팬들도 이같은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의 철저한 선수파악과 체력강화, 맞춤형 전술을 통한 거시적 팀만들기를 봐온 터라 다른 외국인 감독은 성에 차지 않는다. 외국인 감독의 조기 퇴출이 뒤를 이었다.

지금 대한축구협회에는 에이전트와 지인을 통한 외국인 감독들의 이력서 넣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적정 몸값(연봉 100만달러, 약 11억원)을 떠나 쉽게 적임자를 고르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히딩크, 히딩크급이라는 단어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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