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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팬들은 새로운 기술위원회에 큰 기대를 걸었다. 조광래 A대표팀 감독 경질 과정에서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해 큰 실망을 안겨줬지만 뒷 수습만이라도 잘할 것으로 생각했다. 12일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기술위원회 명단을 보면 기대를 걸만 했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을 비롯해 안익수 부산 감독 등 공부하는 지도자에 스포츠심리학자, 운동생리학 교수 등이 총망라됐다. 국제적인 감각도 넘쳤다. 유학파도 다수 있었다. 현재의 혼란 상태를 해결하고, 뭔가 한걸음 나아간 비전을 내놓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기술위는 A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해 입을 댈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음을 이날 다시 한번 증명했을 뿐이다. 회의 이후 열린 황보 위원장의 브리핑이 기술위원회의 초라한 현실을 잘 말해주었다. 그저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을 뿐이었다. 황보 위원장이 밝힌 선임 기준은 대표팀 지도 경험이 풍부해야 하며 국내외 감독을 대상으로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외국인 감독 위주로 접촉하며 단기간에 대표팀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물을 선택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는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후보군에 대한 논의도, 클럽 감독 겸임이나 윗선의 입김에 대한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돌아온 답은 그저 "오늘 첫 회의를 했을 뿐이다. 다음 기술위원회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겠다"였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기술위원회를 개혁할 의지도 없었다. '감독 선임에 대한 특별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황보 위원장은 "기술위원회와 협회 기술교육국이 같이 가야 한다. 외부 위원들을 초빙한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뜬금 없는 답변만 했다.
결국 이번 회의를 통해 기술위원회가 감독 선임에 관해 어떤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12월중 2차 회의를 통해 후보군을 압축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역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확률이 높다.
이제 기술위원회는 '윗선'의 의중과 지시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는 '거수기'나 다름없다.
파주=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