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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대 설기현, 같은 79년생이지만 완전히 달랐던 축구인생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1-11-28 12:35


◇전북 이동국 스포츠조선DB

◇울산 설기현 스포츠조선DB

축구계에는 79년생 모임이 있다. 이 친목모임의 중심이 전북 현대 주포 이동국(32)이다. 이동국의 단짝 친구 김은중(32·강원)도 모임의 핵심 멤버다. 그런데 79년 1월생인 설기현(32·울산 현대)은 그 모임에 들어가 있지 않다. 설기현은 79년 1월8일생으로 78년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따라서 이동국이 포항제철공고 3학년이었던 97년, 이미 설기현은 광운대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둘은 어릴 때부터 서로를 잘 알았다. 강원도에서 볼을 찬 설기현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이동국의 명성을 익히 들었다. 청소년대표를 함께 했던 1990년대말까지만 해도 설기현은 이동국 발 아래에서 놀았다. 98년 태국에서 벌어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 당시 주역이 이동국이었다. 이동국은 당시 제1의 공격수였다. 그 다음이 김은중이었고, 설기현은 조커였다. 이동국은 그해 K-리그에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고 신인상까지 받았다. 게다가 차범근 감독이 이끈 프랑스월드컵대표팀 최종엔트리에 포함, 황선홍(현 포항 감독)과 같은 방을 썼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기현에게 이동국은 다른 세상 사람과 같았다.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설기현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99년 함께 출전했던 나이지리아 세계청소년월드컵 마지막 말리전(4대2 한국 승)에서 설기현이 두 골을 터트렸다. 이동국은 한 골을 넣었다. 이때부터 유럽 에이전트들은 설기현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듬해 7월 설기현이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진출 프로젝트 1호로 발탁, 벨기에 앤트워프에 나갔다. 이때부터 약 10년 동안 둘의 인생은 역전이 됐다. 설기현은 국내 무대가 아닌 유럽에서 고속성장했다. 반면 이동국에겐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설기현은 안트워프에서 인정을 받고 벨기에 명문 안더레흐트를 거쳐 영국 울버햄턴, 레딩, 풀럼까지 갔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선 천금의 동점골을 넣어 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2006년 독일월드컵 최종엔트리에도 들어 프랑스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박지성 동점골의 시발점이 됐다. 설기현은 10년간의 유럽 생활을 접고 지난해 포항을 거쳐 지금 울산의 주전 공격수로 뛰고 있다.

이동국은 2001년 독일 베르더 브레멘에 진출했다가 적응에 실패했다. 2007년부터 1년6개월 동안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서 뛰었지만 정규리그 골 없이 마감하고 K-리그로 돌아왔다. 이동국은 설기현이 한-일월드컵 4강 달성으로 병역특례를 받았을 때 전국을 돌며 방황했다. 이동국은 병역특례를 받지 못했고 광주상무에서 군복무했다. 또 이동국은 2006년 독일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무릎을 다쳐 TV로 경기를 지켜봤다.

이동국과 설기현은 지난 10년 동안 동시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동시에 빛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둘이 하나의 우승 트로피를 놓고 이번에 만났다. 2011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를 대표한다. 이동국은 2009년부터 최강희 전북 감독의 손을 잡으면서 K-리그 대표 킬러가 됐다. 설기현은 올해 울산 김호곤 감독의 품에 안겼고,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울산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 놓았다. 설기현은 올해 울산이 리그컵 우승할 때도 주역이었다.

이동국은 K-리그 276경기에서 115골(47도움)을 터트렸다. A매치 기록은 86경기에서 25골을 넣었다. 설기현은 K-리그 55경기에서 13골(13도움), A매치 83경기에서 19골을 기록했다.

그동안 이동국의 축구인생은 '새드 무비(슬픈 영화)'에 가까웠다. 반대로 큰 경기에 강했던 설기현은 운좋게 '해피엔딩'이 많았다. 이번에 둘 중 한 명은 웃고, 다른 한 명은 울게 된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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