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하고도 눈치 본 이정수의 고뇌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1-11-06 13:46 | 최종수정 2011-11-06 13:47


승자였지만 웃지 못했다. 이정수는 5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였다. 승부차키 키커로 나서는 이정수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전주=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1.11.05/

아시아의 챔피언이 된 순간 이정수(31·알 사드)는 한발 물러서 있었다.

알 사드가 승리에 도취돼 춤을 추며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동안 이정수는 함께 하지 못했다. 헹가래를 할때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정수는 "한국팬들이 보고 있어서 속으로만 기뻐했다"고 했다. 그는 A대표팀에서는 팬들의 환호를 받는 한국의 대표 수비수였지만, 5일 경기에서는 적군이었다. 알 사드가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히며, 국내팬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자였지만 웃지 못했다. 이정수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였다.

이정수는 "이번에 우승하지 못했으면 많이 혼났을텐데 이번 승리로 그 전에 잘못했던게 묻혀졌으면 좋겠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정수는 수원 삼성과의 4강 1차전 난투극에 여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정수는 수원전에서 난투극을 보다 못해 스스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기도 했다. 비신사적으로 골을 넣었기 때문에 팀 동료들에게 한 골을 내주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팀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래도 카타르 클럽에 소속된 선수인만큼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정수는 전북의 '닥공(닥치고 공격)축구'를 온몸으로 막아났다. 그리고 찾아온 승부차기. 호르헤 포사티 감독은 이정수를 3번 키커로 지목했다. 이정수는 "솔직히 키커로 나서고 싶지 않았다. 케이타도 나가고 찰 수 있는 선수가 없어서 안찬다고 못하겠더라"고 했다. 전북팬들의 야유속에 이정수는 킥을 날렸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정수의 발을 떠난 볼은 크로스바를 맞고 나왔다. 이정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만약 졌으면 카타르 언론에게 혼났을텐데 다행히 골키퍼가 잘해줬다. 동료들도 괜찮다고 격려해주더라"고 했다.

마음고생은 이제 끝이다. 알 사드는 올시즌 리그와 컵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해 내년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내년 6월까지 알 사드와 계약이 남아있는 이정수는 더이상 K-리그 팀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며 웃었다.

그의 눈길은 월드컵예선으로 향했다. 결승전을 마친 이정수는 조광래호 합류를 위해 6일 아랍에미리트(UAE)로 떠난다. 중동에서 뛴 경험을 살려 최종예선 진출에 일조한다는 각오다. 이정수는 "중동축구는 개인기가 좋아서 압박에 신경써야 한다. 지난번 UAE와의 홈경기에서 깔끔하게 이기지 못했기에 이번엔 무실점 경기를 하겠다"고 했다. 아시아 챔피언으로는 웃지 못했지만, A대표팀에선 한국팬들의 환호속에 웃는 이정수를 봤으면 좋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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