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구자철(22·볼프스부르크)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다. 2010~2011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마지막 경기(호펜하임전)였다. 패했더라면 소속팀이 2부리그로 강등될 뻔 했다. 하지만 3대1 역전승을 거두며 턱걸이로 1부리그에 잔류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과 원정 응원을 온 팬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광란의 축제를 벌였고 구자철도 이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췄다. 구단은 선수들과 팬을 위해 진스하임에서 볼프스부르크로 가는 열차 세 편을 전세냈다. 열차 내에서 맥주 파티가 벌어졌다. 승강제가 없는 K-리그 팬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올시즌 K-리그 최종전에서 이와 비슷한 긴장감이 조성됐다. 마지막 경기까지 6강 플레이오프 진출팀(5, 6위)과 3, 4위의 순위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6강싸움을 벌이던 경남 전남 부산의 홈구장과 3, 4위를 놓고 다툰 수원과 서울의 격전지가 특히 그랬다.
관중 수부터 차이가 났다. 3연승의 상승세를 타며 6강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경남의 경우 2만2468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안방인 창원축구센터를 벗어나 최진한 경남 감독의 고향 진주로 나들이를 한 프리미엄도 있었지만 6강 진출여부가 결정되는 최종전에 대한 경남팬들의 관심이 지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올시즌 경남의 홈평균 관중 9068명의 2배가 넘는 수치다. 8위였던 전남도 광양전용구장에 홈평균 관중 6852명을 훌쩍 뛰어 넘는 1만115명의 관중을 유치했다. 부산은 상대팀이 최하위 강원이었음에도 시즌 평균 관중수에 근접한 6237명이 입장했다.
수원의 홈경기가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는 환호성과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전반 30분 수원 마토가 선제골을 넣자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3위 싸움을 벌이던 서울은 경남 원정에서 0-0으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승점은 동률인 가운데 골득실차에서 1 앞서 있던 수원으로서는 3위 확정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 서울 하대성의 해트트릭 소식이 전해지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수원 관계자도 실시간으로 서울의 스코어를 확인하는데 분주했다. 결국 수원 선수들은 제주에 2대0 승리를 하고도 웃질 못했다. 반면 같은시각, 최용수 감독대행은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하대성의 세 번째 골이 터졌고, 3대0 완승의 방점을 찍은 순간이다. 수원에 다득점에서 앞섰다. 한 골 차이에 울고 웃는, 두 경기장에서 펼쳐진 명승부였다. 순위 결정만으로도 승강제의 강등권 싸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2013년 승강제 실시를 앞두고 있는 K-리그는 내년 시즌에 한시적으로 스플릿시스템을 운영한다. 8위 이내에 들기 위한 생존경쟁이 펼쳐진다. 최하위 4팀은 2013년 다른 운명을 맞게 된다. 막판 순위경쟁이 치열할수록 2011년 K-리그 최종전에서 연출됐던 긴장감은 지속될 듯 하다. 승강제의 묘미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