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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6호로 역사에 남아 있다.
족적은 미약했다. 2009년 2월 위건에 둥지를 틀었다. 첫 단추부터 꼬였다. 데뷔전도 치르기 전에 A매치에서 종아리를 다쳤다. 회복되자 자신을 영입한 스티브 브루스 현 선덜랜드 감독이 팀을 떠났다. 1년 만에 그는 국내로 돌아왔다. 5경기 출전에 그쳤다.
광저우 우승의 일등공신에는 조원희(28)도 있었다. 2부 리그에서 승격한 광저우는 첫 시즌에 1부 리그에서 챔피언에 올랐다. 16일 안방인 톈허스타디움에서 열린 상하이 선화(3대0 승)와의 27라운드 직후에는 우승 축하행사가 열렸다. 그의 이름 석자도 당당히 울려퍼졌고, 경기장을 찾은 5만여 팬들도 환호로 화답했다.
이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올초 이적할 곳을 찾지 못해 3개월간 훈련을 쉬었다. 광저우행이 결정된 후 경남 마산전지훈련에 합류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감독은 "처음에 합류한 후 정말 걱정이 됐다. 중국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선택한 한국 선수가 조원희였다. 잘못 쓰면 독약일 수 있었다"고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재기를 위해 발버둥쳤다. "정말 독을 품고 열심히 했어요." 그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됐다. 프리미어리거 출신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자신에게 가혹한 채찍을 가했다. 광저우 입단 초기 초심으로 돌아가 하루 3차례씩 훈련을 했다. 지옥 여정을 6주간 계속했다. 팀 훈련 외에 보충 훈련을 별도로 가졌다. "정말 힘든시간이었요. 김용갑 코치님이 많이 도와줬어요. 새벽, 밤을 가리지 않았어요. 그걸 이겨내 뿌듯하고 기뻐요."
조원희는 경기를 치르면서 컨디션을 회복했다. 자신감도 찾았다. 이 감독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3라운드가 남은 정규리그에서 전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교체 아웃은 두 차례 뿐이었다. 최근 박태하 수석코치가 조원희의 경기력을 점검하기위해 오려다 막판에 취소했지만 조광래 A대표팀 감독도 주목하고 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 출전한 그는 "축구 선수라면 월드컵에 당연히 욕심난다. 그러나 현재는 그 욕심을 내려놓았다. 지금 몸은 너무 좋다. 조광래 감독님이 추구하는 축구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광저우와의 계약기간은 1년이다. 재계약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용병으로 산다는 것은 역시 부담감이 크다. 늘 잘해야 된다. 팀이 우승해 정말 기분이 좋다"며 "다른 구상은 없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선수들과도 편하게 지내고 있다. 조금 더 배운 후 국내로 돌아가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웃었다.
광저우는 내년 시즌 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다. K-리그팀을 만난다. 벌써 설렌단다. 조원희는 "K-리그에 비해 템포가 조금 느리다. K-리그는 팀들의 전력이 평준화 됐지만 중국은 상-하위권의 전력 편차가 크다. 하지만 양국의 격차는 많이 좁혀진 것 같다"며 "중국 선수들은 너무 낙관적이고 긍정적이어서 답답할 때가 있지만 우리 팀의 전력만 놓고 봤을 때는 K-리그 어느 팀에도 쉽게 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무대는 중요치 않았다. 생각이 정신력을 지배하고 있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조원희는 한층 성숙돼 있었다.
광저우(중국)=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