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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영권을 통해 본 조광래, 그의 눈은 정확했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1-06-05 14:54


김영권이 3일 세르비아전 후반 9분 골을 터트리고 환호하고 있다. 김영권의 A매치 첫골이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선수의 잠재력과 장단점을 꿰뚫어보고 컨디션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배치, 최상의 경기력을 끌어내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포지션에 적합한 선수 발굴 또한 감독의 중요한 임무다. 물론 상대팀의 멤버 구성, 전형, 전술 분석은 기본이다.

이런 측면에서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의 눈은 날카롭고 정확했다. 기존 선수의 활용뿐만 아니라 기존 선수 중에 포지션에 적합한 선수가 없다고 파단되면 만들어 쓰는 조광래식 용병술이 한국축구의 경쟁력 강화를 끌어내고 있다. 시늉만 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아닌 포지션의 패러다음을 바꾸는 용병술이라 할만하다. 새얼굴 찾기와 함께 조 감독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지난 1월 카타르아시안컵이 끝난 뒤 조 감독에게 과제가 떨어졌다. 대표팀의 주축 역할을 해온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 은퇴를 선언하면서 두개의 기둥이 빠져나갔다. 둘의 공백 채우기는 단순한 선수 발굴 정도가 아닌 한국축구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후반 9분 대표팀의 두번째 골을 기록한 김영권(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경기장 밖에서 몸을 풀고 있던 구자철 이승현 김재성 등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상암=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조 감독은 수없이 고민했다. 세르비아와 가나전에 나설 대표 선발을 앞두고 "마음에 드는 왼쪽 윙백이 보이지 않으면 미드필더인 이용래를 왼쪽 측면 수비수로 써보겠다"는 얘기까지 했다. 9월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을 앞두고 있는 조 감독의 머리와 가슴은 온통 수비라인 짜기에 집중돼 있었다. 조 감독은 "세르비아전과 가나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비라인 점검이다. 공격도 중요하지만 수비진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조 감독이 고심 끝에 내놓은 카드가 중앙 수비수 김영권(21·오미야)의 왼쪽 측면 수비수 기용. 이정수-홍정호로 중앙 수비라인을 꾸린 가운데 김영권이 이영표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한 것이다. 1m86 장신인 김영권은 수비가 안정적이지만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평가. 활발한 오버래핑보다 힘이 좋은 세르비아를 맞아 안정적인 수비를 기대했다. 그런데 김영권은 조 감독이 바랐던, 수비 안정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1골-1도움을 기록했다. 조 감독의 기대를 100% 이상 완수한 것이다.

조 감독은 세르비아전을 앞두고 "김영권이 소속팀에 가끔 측면 수비수로 출전하곤 하는데 나쁘지 않았다. 전혀 낯선 포지션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를 걸어볼만 하다"고 밝혔다.


김정우가 세르비아의 간판선수인 스탄코비치에 앞서 공을 걷어내고 있다. 상암=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세르비아전에서 김영권이 좋은 활약을 했다고해서 이영표의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김영권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조 감독은 새로운 카드를 손에 쥐게 됐다.

조 감독의 포지션 파괴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김영권이 처음은 아니다. 조 감독은 지난 1월 열린 카타르아시안컵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인 구자철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세워 성공했다. 구자철도 확신하지 못했던 공격적인 잠재력을 끌어낸 것이다. 구자철은 5골을 터트리며 카타르아시안컵 득점왕에 올랐다.


지난 3월 온두라스와의 평가전 때는 소속팀 상주 상무에서 공격수로 나서 골을 양산하고 있던 수비형 미드필더 김정우(29)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썼다. 대표팀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자신에게 경쟁력이 있다며 포지션 변화에 소극적이었던 김정우에게 공격적인 역할을 맡겼다. 이 경기에서 김정우는 골까지 터트리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포지션 파괴는 선수의 멀티 능력 재발견에 그치지 않고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기존 선수를 자극하고 경쟁을 유도한다. 선수 자원이 풍부하다고 볼 수 없는 한국축구의 인재풀을 넓히는 것이다. 조 감독이 원하는, 수비에 적극인 공격수, 수비에 집중하면서도 공격을 아는 수비수가 많아질수록 한국축구의 경쟁력은 좋아진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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