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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감독 "상실의 고통, 전시하고 싶지 않았다"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8-08-29 10:39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슬픔을 '전시'하지 않는 사려깊은 태도. 주제와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상처 받은 이들을 끌어않는 마음. 올해 충무로의 가장 빛나는 발견이 될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신동석 감독의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로 완성됐다.

애도와 용서, 최책감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살아남은 아이'(신동석 감독, 아토ATO 제작). 메가폰을 든 신동석 감독이 최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가진 라운드 인터뷰에서 개봉을 앞둔 소감과 영화 속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전했다.

지난 해 22회 부산국제 영화제 신인 감독 국제 경쟁 부문인 큐 커런츠 섹션에서 공개된 이후 국내외 언론 매체의 열렬한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는 '살아남은 아이'. 뿐만 아니라 국제 영화 비평가·영화 기자 연맹이 국제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을 뿐 아니라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초청·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는 지난 23일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도 국내 평단과 언론의 극찬을 이끌어내며 '아트버스터'의 탄생을 예고했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와 죽은 아들이 살려낸 아이의 만남이라는 딜레마로 시작되는 영화는 세 인물의 감정선과 관계의 변화라는 축으로 두 시간 동안 이끌어 나가는 갈결한 이야기 구조를 지녔다. 하지만 강렬한 스토리 위에 겹겹이 축적된 인물들의 감정이 밀도 높은 긴장감을 형성해 영화적 재미를 살려냄과 동시에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신동석 감독은 상실감이라는 어두운 감정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를 다루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사실 가족, 특히 아이가 죽는 이야기는 하기가 어렵다. 글을 쓰는 사람도 인물에 빠져들다 보면 고통스럽다. 그래서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는 게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 될 것 같아서 피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더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오히려 쓰고나서는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이야기를 보다 강하게 영화로 옮겨야 겠다는 열망이 강하게 들었다. 이 시나리오 자체가 내게 힘을 줬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 감독은 20대 시절, 친했던 주변 사람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경험하고 영화에서 중심으로 다루는 진정한 애도와 상실에 대한 생각을 늘 가슴에 품었다고 전했다. "그때 나 나름의 애도의 과정을 거쳤지만 사실 그때는 잘 몰랐다. 내 감정의 혼돈이나 기복을 어떻게 감당해야하는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화도 많이 냈다. 또 나도 모르게 남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위로를 한답시고 상투적으로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런 뒤부터 애도나 죽음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때부터 언젠가 이런 주제에 대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쭉 가슴에 품고 있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내 첫 작품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그에게 위안을 준 소설이나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번 영화에 직접적으로 인용을 하거나 참고한 작품은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저자 서경식)이란 책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쁘리모 레비 아우슈비츠 생존자다. 홀로코스트에서 빠져 나온 뒤 폭력의 시대의 잔혹함을 알리는 증언 문학을 하시면서 사셨다. 문학을 하시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아 진듯한 삶'을 사시던 그분이 홀로코스트에서 나온 후 30년만에 자살을 했다. '왜 그는 30년만에 자살을 했을까' 궁금증을 갖고 서경식 교수님께서 그분의 발자취를 찾아 유럽을 기행하면서 쓴 책이다. 이 책과 '살아남은 아이'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책을 보고 큰 울림을 받았다."

신동석 감독은 극중 설명에 대한 설명도 뒤 이었다. 아이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겪은 부모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 아들을 대하는 애도 방법의 차이를 보이는 두 사람에 대해 신 감독은 '아들의 무덤을 꾸미는 사람'과 '고통에 머물머 삶은 지속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성철은 아들이 죽은 이후에 아들의 무덤을 꾸미 사람이다. 아들의 부덤 옆에 비석도 놓아주고 나무도 심어주고 잔디도 깔아주면서 자신의 상실감을 극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숙은 오히려 아들을 잃었다는 고통 속에 머물고 있을 때 삶이 지속가능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아들 은찬과의 맞닿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지점을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설정했다. 예를 들어 은찬이 동생을 원했었다는 걸
기억하고 아이를 가지려고 움직이는 사람인 거다.


두 인물의 이러한 면에서 기현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던 거다. 성철은 아들이 살린 기현을 도와주는 게 인간적인 정으로서 행한 행동이었다기 보다 아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을 거다. 미숙같은 기현을 보면 죽은 은찬이 떠올라서 괴롭고 그로 인해 기현을 밀어내려 했지만 결국 기현에게서 은찬과 맞닿아 있는 접점을 보고 마음을 여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극중 부부가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것 역시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를 드러내는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감독은 실제로 부부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가게에서 일을 도우며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지켜보다 '도배'라는 작업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인테리어 가게에서 샷시, 도배, 장판 등 많은 일을 하는데, 그중 유독 도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작업 자체가 성철의 입장에서는 헌 것, 금간 것을 새하얀 벽지로 바르면서 상실감을 극복하는 느낌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죄책감을 벽지로 덮으려고 하는 느낌을 줬다. 그래서 인테리어 작업 중 도배를 영화의 중심에 두고 다뤘다."

첫 연출작을 상실과 죄책감이라는 어려운 감정을 다룬 신동석 감독. 그는 이 감정들을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방식이 아닌 어루만지는 방법을 택하며 '살아남은 아이'를 사려깊으면서도 진진한 감정을 전해주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자식을 잃은 부부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들의 고통을 선정적 혹은 자극적으로 다루거나 전시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인물이긴 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도 그런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고통을 가진 이들을 너무 거리감 있게 잡아내고 차갑고 냉정하게만 그려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촬영 감독님과 처음 미팅을 했을 때 카메라의 위치가 인물들의 '친구' 같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마치 친구처럼 인물에 두어발자국 정도의 거리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물을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다가 이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다가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할까. 그리고 그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이 죽고 대신 살아남은 아이와 만나 점점 가까워지며 상실감을 견디던 부부가 어느 날, 아들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신동석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고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등이 출연한다. 8월 30일 개봉한다.

smlee032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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