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변하지 않는 복수의 심리학, 이혜영 주연의 '메디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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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메디아는 복수의 화신이다. 조국을 배반하며 남편을 믿고 타국에 왔는데 세상에,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그 나라 공주와 결혼한단다. 속된 말로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 없다.
메디아 역의 이혜영은 두 말이 필요없는 배우다. 영화와 드라마, 연극과 뮤지컬을 종횡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강렬한 에너지와 카리스마 등 그녀를 수식하는 표현은 이미 진부하다. 5년 전 같은 극장에서 공연한 '헤다 가블러'와는 또 다르게, '원 톱' 타이틀롤을 맡아 비명을 지르고, 구두짝을 날리고, 웃다가 울다가, 칼을 휘두르는 자아분열의 여인을 2시간 가까이 연기한다. 과연 어떤 배우가 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 연극의 코러스들을 부활시킨 것도 인상적이다. 과거의 전통을 이어받아 드라마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주인공 메디아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아울러 진태옥이 디자인한 메디아의 빨간 드레스는 형광 조명과 어우러져 비극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극 후반부, 메디아는 남편을 빼앗아가려는 코린토스의 국왕과 공주를 계략을 써서 죽인 뒤 자신이 낳은 두 아들도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남편 이아손이 "도대체 애들은 왜 죽였소?"라고 묻자 메디아는 답한다. "당신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원작과 달리 로버트 알폴디는 이아손이 메디아의 목을 졸라 죽이는 걸로 결말을 바꾸었다. 한바탕 '피바다'를 연출하며 고대 그리스판 '막장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복수심은 사실 배신한 상대가 밉기에 앞서 철썩같이 믿었다가 상처받은 자신의 자아(ego)를 견디지 못함이 더 크다. 모욕감을 안고 살아가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다. 메디아가 아들들까지 죽인 심리적 배경이다. 에우리피데스의 고전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이러한 변하지 않는 인간성의 단면을 포착했기 때문이리라. 4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