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초점] 2년만에 종결된 '관상' 법정공방…씁쓸한 뒷맛 남는 이유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16-11-18 10:55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2년여간 진행된 사극 영화 '관상'(한재림 감독, 주피터필름 제작)의 법정공방이 마침표를 찍은 상황. 씁쓸한 뒷맛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13년 9월 개봉, 무려 913만(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상망 집계 913만4586명) 관객을 동원하며 추석 극장가를 들썩이게 만든 '관상'. 왕의 자리가 위태로운 조선, 얼굴을 통해 앞날을 내다보는 천재 관상가가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김혜수 등이 충무로 톱스타들이 대거 가세, '우아한 세계' '연애의 목적'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화제를 모았다.

신선한 소재와 배우들의 명연기가 어우러져 관객의 사랑을 받은 '관상'이었지만 개봉 이후 KBS2 '왕의 얼굴'(이향희·윤수정 극본, 윤성식·차영훈 연출)의 '관상' 표절 논란, 제작사 주피터필름과 한재림 감독의 마찰 등 계속된 법정공방이 이어진 것. 특히 주피터필름과 한재림 감독은 법정공방은 한국 영화계 제작 현실의 병폐를 꼬집는 사례, 영화계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앞서 '관상' 제작 초기단계인 지난 2011년, 주피터필름은 한재림 감독과 감독고용계약을 체결했다. 감독고용계약 내용에는 '감독이 고용계약상 의무 위반으로 제작 일정과 예산에 손해를 입힐 경우 제작사가 입은 손해를 감독이 배상하기로 합의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어있다. 이를 인지한 한재림 감독 역시 별다른 제기 없이 주피터필름과 감독고용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이렇게 주피터필름과 한재림 감독은 의기투합, 촬영에 돌입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부터였다.

한재림 감독은 '관상' 프리프로덕션 당시 합의된 4~5개월 촬영 기간을 7여개월로 늘렸고 당연히 늘어난 촬영 기간에 따라 순제작비는 초과될수밖에 없었다. 주피터필름은 늘어난 촬영 기간에 15억5000만원의 손해가 발생된 것. 이에 주피터필름은 한재림 감독이 고용계약상 의무위반 행위가 있었고 이러한 감독의 계약 위반이 영화의 제작 일정 및 예산 초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제작사와 감독이 서면에 따른 계약 체결을 진행하곤 있지만 여전히 제작사와 감독은 계약상 책임에 대한 의식이 높지 않고 이로 인해 계약 위반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었고 '관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에 주피터필름은 한재림 감독의 계약 의무 위반이 있는지 여부와 그 위반 행위가 제작비 초과에 어느 정도 비율의 책임이 있는지 등 법률적으로 평가받을 목적으로 법원에 한재림 감독의 의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주피터필름이 의무 위반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자 한재림 감독도 흥행성공보수금을 꺼내 맞불을 놓았다. 제작사 수익 중 5%인 2억여원을 흥행보수로 달라며 흥행성공보수금 맞소송을 건 것. 한재림 감독이 말하는 제작사의 수익은 극장매출 순수익과 영화 DVD 발매 수익을 포함한 전체 수익을 기준으로 계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팽팽하게 맞선 주피터필름과 한재림 감독. 이렇게 시작된 소송은 1심을 거쳐 2심까지 이어졌다. 먼저 재판부는 1심에서 주피터필름의 청구를 기각하는 한편 한재림 감독의 흥행성공보수금에 일부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갖췄다. 재판부는 한재림 감독이 1심에서 주장한 2억여원이 아닌 약 1억8000만원 선의 흥행성공보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한재림 감독의 계약의무 위반 여부를 살피기에 앞서 '한재림 감독이 제작비 초과로 인해 주피터필름이 지금과 같은 손해를 입게 될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이유를 내세운 것. 한재림 감독의 의무위반 여부는 1심 판단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았고 한재림 감독의 계약 의무 위반 여부도 당연히 재판부의 판단에서 제외된 상황이었다. 여러모로 억울했던 주피터필름이었지만 재판부의 판결에 따라 한재림 감독에게 1억8000만원의 흥행성공보수금을 지급했고 곧바로 항소를 준비했다. 한재림 감독 역시 1억8000만원으로 만족할 수 없다며 추가금 5000만원 지급을 주장하며 맞항소를 벌였다.

이에 지난 17일 '관상' 제작사 주피터필름이 한재림 감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와 한재림 감독이 주피터필름을 상대로 제기한 흥행성공보수금 청구 2심이 진행됐다. 주피터필름은 한재림 감독의 무리한 진행으로 인한 제작사의 손해를 인정해달라고 법에 호소했고, 한재림 감독은 1심 당시 제기했던 흥행보수금을 모두 인정해달며 추가금 5000만원에 대한 항소를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양측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재판부는 "촬영 시기가 겨울이면서 연말이고, 장르가 사극이다 보니 날씨와 출연진의 일정 문제로 촬영일정이 예상보다 길어진 것"이라며 한재림 감독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주피터필름의 주장을 기각했고 한재림 감독의 주장에 대해서는 "양측의 계약에 따르면 한 감독의 흥행보수금 산정방법은 전체 흥행수익이 아니라 극장매출 순수익을 기준으로 따지기로 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추가금 요청을 기각했다.


항소심 결과 이후 주피터 필름은 "본 소송은 주피터필름과 같은 영화 제작사들이 그 존폐를 걸고 진행하는 영화제작 사업에 있어서 제작비나 흥행 실패에 대한 어떠한 금전적인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 감독들이 예술성, 작품성이라는 가면을 쓴 채 제작사와의 약속된 계약을 벗어나 개인의 창작욕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는 한국 영화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건전한 한국 영화산업 발전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자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송 과정에서 주피터필름은 영화제작에 있어서 예산 및 일정 준수가 감독의 계약상 의무임이 명확하고, 감독이 이를 위반하여 제작사에 초과 제작비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하고자 최선을 다하였으나, 재판부는 감독이 자신의 채무를 불이행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다고 보아 주피터필름의 청구를 기각했다"며 "한국 영화계에서 계약서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감독과 제작사의 관계를 정립하고, 상생하는 영화 제작 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본 소송을 진행한 주피터필름의 입장에서는 이번 판결 결과가 대단히 아쉽다"고 토로했다.

주피터필름은 "영화 제작이라는 작업이 고도의 예술적인 창작행위임은 분명하나 감독은 그러한 예술적 창작을 수행해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약속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계약상의 엄격한 의무를 지고 있는 사람"이라며 "누구나 계약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그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예술성이라는 미명 하에 자기 멋대로 영화를 촬영하다가 예산초과가 과다하여 결국 영화가 완성되지 못하거나 미흡하게 마무리되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다"고 탄식했다.

그동안 주피터필름은 한국 영화계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해온 제작사 중 하나다. 특히 주피터필름의 수장 주필호 대표는 '관상' 제작 단계였던 2012년 12월,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영화 수익 중 50%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후 2014년 약속대로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 고통받는 학생, 유가족을 위해 1억원을 기부하는 등 끊임없는 선행을 이어갔다. 두 차례의 기부 외에도 주피터필름에서 제작되는 영화의 수익을 지속적으로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한국영화계 뜻깊은 사례를 남겼다. 이런 그가 한재림 감독과 2년여간 법정공방을 펼친데는 쉬쉬했던 영화계 제작 병폐를 수면 위로 드러내 좀 더 좋은 제작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단지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욕심이 아니었던 것. 그래서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여러모로 씁쓸한 뒷맛이 남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주피터필름은 "영화는 감독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출연하는 배우와 시나리오 작가, 촬영, 조명, 미술, 분장 등 각 분야를 책임 있게 수행하는 제작진과 전체 스태프, 투자자 등 모든 관계자들의 협업이자 공동 작품이다. 감독은 영화가 대중들 앞에 성공적으로 상영될 수 있도록 정해진 예산과 일정이라는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창작성과 예술성을 발휘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존경을 받는 것"이라며 "주피터필름은 비록 본 소송에서는 입증 부족으로 인해 목적에 부합하는 판단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번 소송을 계기로 향후 영화제작에 있어 예산과 일정 수립에 더욱 만전을 기하고 감독과의 계약 관계상 책임과 의무의 범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건전하고 선진화된 영화제작 환경을 조성해 나가도록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것이다. 또한 영화계에 표준근로계약이 정착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이번 문제 제기를 통해 제작사와 감독이 서로에 대한 계약과 약속을 준수하며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영화 '관상' 포스터 및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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