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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Culture & People] "자연에 모든 소재와 디자인이 다 있습니다. 자연과 사람은 한 몸입니다"- 도자기 명인 김동흥 명장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5-01-25 15:29


◇김동흥 명장이 자신의 작품인 '천지인 항아리'를 설명하고 있다. 하늘과 땅과 인간(天地人)의 뜻을 담았다. 뚜껑에 난 작은 구멍 7개는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흙이 좋아 30여년째 흙과 '연애'를 해온 사람이 있다. 그의 손길을 타고 흙은 병이 되고, 항아리가 되고, 술잔이 된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의 천승산 자락에 자리잡은 '자연과 사람은 한 몸' 도자기 공원. 그곳을 지키고 있는 김동흥 명장(61)이 주인공이다. 첫인상에 살가운 경상도 사투리와 편안한 미소가 잘 어울려 보인다.

"어릴 때부터 찰흙 만들기를 좋아했어요. 비행기, 자동차 등 온갖 것들을 만들었는데 선생님이 '너 정말 잘 한다. 나중에 잘 되겠다'고 칭찬을 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용기백배해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지요.(웃음)"

고교 시절, 물레와 가마를 장만해 혼자서 도자기를 빚기 시작했다. 책 보고 연구하고, 유명하다는 장인들을 찾아가 배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왔다. "이 분들이 너무 한 길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자연에는 여러 성분이 있는데 왜 그걸 활용하지 않을까.'

다양한 재료를 써서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전통을 지키되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해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싶었다. 자연은 무한하다. 어떤 소재를 가미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과 빛이 나온다. 부엽토, 규석, 장석에서 맥반석, 게르마늄 등 기능성 소재까지, 그는 자유로운 탐구정신으로 무수히 실험을 해왔다. 이것도 갈아 넣어보고, 저것도 태워 넣어보았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는 무조건 메모하는 습관도 그의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1984년, 신라의 천년고찰 통도사와 이웃한 이곳에 자리잡은 뒤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관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주병(酒甁)을 물레에 올려놓고 빚고 있었는데 누가 와서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병의 입이 비뚤어졌다. 버릴까 하다가 구워보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이 나왔다. 어느 날 일본 손님이 와서 그 작품을 보고 묻길래 '주병의 변(辯)'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술병도 할 말이 있다'는 뜻이라고 풀이해줬더니 그 손님이 80년대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50만원에 그 작품을 사가는 게 아닌가. '아, 이거구나!' 그는 우연과 무위(無爲), 나아가 도전과 실험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자연과 사람은 한 몸'이라는 이름도 그의 예술관을 잘 드러낸다. "자연에 모든 소재가 있고, 모든 디자인이 다 있습니다. 이런 자연에 당연히 순응해야지요. 그래야 참된 예술이 나오고 행복할 수 있어요."

김 명장은 부지런하다. 요즘에도 새벽 5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재료를 고르고, 흙을 갈고, 성형하고, 건조하고, 불을 때고, 투각과 그림에 글씨까지 모든 과정을 꼼꼼히 챙긴다. 이제는 작업장 규모가 커져 직원도 많이 쓰고 있지만 재료 배합과 유약 만드는 법만은 아직 전수해주지 않았다며 살짝 웃는다.


◇천연염색 장인인 부인 최영자 원장(왼쪽)은 그의 예술적 동반자이기도 하다. 부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김 명장.

천연염색을 하는 부인 최영자 원장과 함께 일군 도자기 공원은 이제 지역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1만 5천평에 대형 전시실 3개, 작업장 3개, 체험관은 물론 펜션과 게스트하우스까지 갖췄다. 은은한 도자기의 향취를 느끼며 이웃한 천승산 자연 생태계와 숲속 솔향기 산책로도 걸을 수 있다. 자연과 사람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지난해에만 30만 명의 내외국인이 이곳을 찾았다.

샘솟는 탐구심 덕분에 그는 특허도 많이 따놓았다. 디자인 등록 3개, 의장등록 2개, 상표 등록 1개다. 그 가운데 최첨단 건축자재인 황토 에코보드는 김 명장의 히트작이다. 자연과 예술에 기능을 더해보자는 그의 미학관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9가지 재료를 사용해 만든 황토 보드로 가습 제습 기능에 불연성이라 타지도 않는다. 원적외선이 방출돼 시멘트로 만든 아파트에 자연을 심을 수 있다. 9가지 요소가 뭐냐고 물었더니 "특허 기밀이라 말해 줄 수 없다"며 웃는다. 아이디어가 워낙 넘치는 탓에 술자리에서 자기도 모르게 얘기했다가 '도둑' 맞은 적도 많다고 한다.

김 명장은 작품 제작 외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전통명장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부산대 안동대에 출강 중이다. 오는 3월엔 폭넓은 정보공유를 위해 도자기 공원 인터넷 사이트(www.ceramicpark.co.kr)를 개설한다. 한방 힐링 동산과 전통 공예 대안학교도 1, 2년 안에 오픈할 예정이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참에 그가 "도자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뭔지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글쎄요?"라고 머뭇거리자 그는 "마음"이라고 답한다. 참된 마음을 담아야 만든 사람도, 그것을 보는 사람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보며 설레고 감동을 받는 순간,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천승산 자락에 따뜻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연과 사람은 한 몸' 도자기 공원 (055)374-2605~6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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