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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대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힌 이유는? "아들과 조카 해고"

정안지 기자

기사입력 2015-01-12 09:01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일부 재벌3세들의 '갑질횡포'가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가운데 유한양행의 창업주 故 유일한 박사의 경영 사례가 소개돼 눈길을 끈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백화점 모녀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상위층 '갑질 논란'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행보를 대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1971년 노환으로 사망한 유일한 박사는 주식은 전부 학교에 기증하고, 아들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유서를 남겨 당시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유일한 박사의 자녀를 대신해 회사를 이끈 유한킴벌리 초대회장 이종대는 "딸이고 아들이고 회사에 개입이 없었다. 그 당시에 그걸 보고 놀랐다. 그분 곁에서 보니까 기본 정신이 가족을 위한 게 아니라 머릿속에 민족이라고 하는 게 철저하게 박혀있더라. 전부 다 오너 기분으로 회사를 다녔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일한 박사는 1969년 외아들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물려주면서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아들과 조카를 해고했다. 이와 관련해 연만희 유한양행 전 고문은 과거 인터뷰에서 "(유일한 박사가) 이 조직 속에 친척이 있으면 파벌이 형성된다. 회사 발전에 지장을 받으면 안 되니까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 우리와 친척 되는 사람을 다 내보내야 한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유일한 박사는 당시 정치자금 압박에 굴하지 않아 혹독한 세무감찰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국민들을 위한 예산으로 쓰일 귀한 돈이라고 세금을 원칙대로 모두 납부했다.

당시 유한양행 세무조사를 맡은 감찰팀장은 "20일간 세무조사를 했지만 무슨 한국에 이런 업체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털어도 먼지 한 톨 안 나오더라"고 털어놨다.


한편 1895년 평양에서 부유한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유일한 박사는 9세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전자회사 제너럴 일렉트릭(GE)에 회계사로 취직했다.

그러나 유일한 박사는 조국 독립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고, 1919년 3·1운동 직후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과 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해 당시 재미 중국인들을 겨냥한 숙주나물 통조림으로 큰돈을 벌었다.

이후 유일한 박사는 1926년 미국 최초의 동양인 여의사인 중국인 아내 호미리와 함께 귀국해 서울 종로에 유한양행을 설립, 결핵약과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을 출시했다.

1938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엔 더욱 적극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펼친 유일한 박사는 194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국방경비대(맹호군)를 창설해 직접 특수요원으로 활약했다. 광복 후 귀국한 유일한 박사는 기업가로서 유한양행을 국내 2위의 제약사로 키웠다.

유한양행은 유 박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기념해 '유일한 상'을 제정했다. 1995년 유 박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이 상은 2년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성취한 인사를 추천 받아 유일한상 심사위원회에서 선정, 시상해오고 있다. <스포츠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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