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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인터뷰] '미생' 김대명 "김대리처럼 좋은 사람 되긴 어려워요"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5-01-12 05:45


배우 김대명이 8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개들의 전쟁' '표적' '방황하는 칼날' '역린'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던 김대명은 했으며, 지난달 20일 종영한 tvN 드라마 '미생'에서 김동식 대리 역을 맡아 큰 주목을 받았다.
김대명은 최근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촬영을 완료했으며 2월부터 영화 '판도라' 촬영에 들어간다. 또 상반기 영화 '내부자들'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5.01.08/

tvN 드라마 '미생'을 마친 후 김대명은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드라마를 촬영하는 6개월 동안 마음껏 아플 수도 없었던 그에게 찾아온 일종의 '종영 후유증'. 말을 걸기가 미안할 만큼 목소리는 꺼끌꺼끌했고, 붉게 충혈된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했다. "그래도 촬영이 다 끝난 뒤에 아파서 다행"이라며 사람 좋은 얼굴로 푸근하게 웃는 모습이 극 중 김동식 대리와 꼭 닮았다.

인터뷰 시작 전 김대명은 A4 종이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을 받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하기 위해 틈틈이 메모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철저하고 성실했다. 이 또한 김대리의 실사판 같다.

김대명도 조금은 헷갈리는 모양이다. "내일도 촬영장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드라마가 끝났다니 실감나지 않아요. 그냥 허한 느낌이 커요. 그렇다고 당장 김대리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아요. 시간이 지나야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런 게 배우의 숙명이니까…."

현실 속 수많은 '장그래'들에게 김대리는 만나고 싶은 이상적인 직장 선배다. 뛰어난 업무 능력과 인간미로 후배를 이끌어주고 상사를 보필한다. 실제 직장인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큼 사실감 넘쳤던 김대명의 연기가 웹툰 속 김대리를 드라마로, 드라마 속 김대리를 현실로 불러낸 원동력이었다. "김동식 캐릭터의 감성적인 면모를 김대명보다 더 잘 표현할 사람은 없다"고 장담했던 연출자 김원석 감독의 말에 100% 공감한다.

"드라마는 첫 출연인데 저의 가능성을 믿어주신 감독님께 너무나 고마워요. 제가 준비한 연기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셨어요. 예전에 감독님이 이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좋은 배우 중에는 '부엉이상'을 가진 이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오차장 역의 이성민 선배가 그런 얼굴이라고요. 저 또한 부엉이상을 갖고 있어서 이성민 선배와 느낌이 비슷하다고 하셨죠. 그래서인지 영업3팀 사람들은 금방 가까워졌어요. 수더분하고 둥글둥글한 느낌이 서로 닮았죠.(웃음)"

김대명은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대본에는 약간의 단서만 제시된 김대리의 과거를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했다. 홀어머니 아래 자라서 재수로 어렵게 지방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위해 아둥바둥 살았을 것 같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장그래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치열하게 일하는 오차장과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설명이다. 5수 끝에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오랜 무명 시절을 겪었던 김대명의 지난 삶과 오롯이 겹치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는 "김대리와 닮은 점이 있긴 하다"면서도 "김대리처럼 좋은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며 쑥쓰러워했다.

"김대리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김대리가 회사를 그만두고 오차장의 회사에 합류한 걸 놓고 의리 때문이라는 얘기도 하던데, 사실은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삶을 선택한 거였죠. 하지만 김대리처럼 살기는 정말 힘든 것 같아요."

김대명은 그 자신도 "연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니까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는 항상 남들을 먼저 배려하고 저는 그 다음이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실천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몇 가지 지침을 세웠어요. 첫째는 싫을 때는 '싫다'고 거절하기. 둘째는 뭐가 됐든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기. 아주 작은 것들에서 행복이 시작되더라고요."


수많은 이야기를 함축한 그의 말에서 그가 걸어온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 '역린', '표적', '더 테러 라이브' 등 여러 작품에서 꼭 필요하지만 조금은 작은 역할을 많이 맡았다. '미생'은 그런 그에 주어진 보상 같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는 들뜨기는커녕 아주 차가웠다.

"장그래의 집 앞에서 김대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인생은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문을 하나씩 여는 것 아닐까.'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죠. '미생'이 끝나고나서 인기가 많아지고 삶이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지금의 관심이 두 달 정도면 끝나지 않겠나 싶어요. 그저 문을 하나 열었을 뿐이죠. 저는 그동안 살던 대로 앞으로도 살아갈 거예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묻자 또 한번 초연한 답이 돌아왔다. "계획 같은 것은 없어요. 당장에 뭐가 될 거라는 기대도 없고요.(웃음) 굳이 계획을 꼽자면 다음 작품도 잘 끝마치는 것 정도? 그걸 잘 해야 또 다음이 있는 거니까.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것 말고는 욕심이 없어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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