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는 위기인가? 박진영의 솔직 답변 "충분히 뭐..."

이정혁 기자

기사입력 2014-11-05 16:36


지난 1994년 '날 떠나지마'로 데뷔한 박진영이 어느덧 20주년을 맞았다.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 소속사 대표, 연기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박진영은 "재미있다고 판단되는 일은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포츠조선DB

지난 20년간 작곡한 노래만 508곡에 달한다. 그 중 1위에 오른 곡이 무려 42곡이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20년간 한 해도 빠짐 없이 1위 곡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꾸준했다는 것이다.

가수 겸 프로듀서,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를 이끄는 사실상의 CEO 그리고 배우까지. 다방면에서 맹활약 중인 박진영(42)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94년, 몸에 딱 붙는 상의를 입고 긴 팔을 휘저으며 무대에서 춤을 추고 데뷔곡 '날 떠나지마'를 부르는 박진영은 단숨에 대중의 눈도장을 받았다.

연세대학교를 다녔던 학력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토해내는 박진영은 '오렌지족' 'X세대'의 대표주자로 간주되었다. 무엇보다 비닐 바지에 파격적인 퍼포먼스까지 선보이며 당당히 자신을 '딴따라'(2집 앨범 타이틀)라고 말하는 그를 대중은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박진영의 '딴따라' 생활은 어느덧 20년이 흘렀고 오는 8일 오후 6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 홀에서 밀크뮤직과 손잡고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 '42 No.1'을 선보인다. '밀크 뮤직 라이브 스테이션(MILK MUSIC LIVE STATION)' 2부에 진행될 이번 공연에는 박진영을 포함 JYP 소속 아티스트인 HA:TFELT(핫펠트), 선미, 15&, GOT7, 버나드 박이 깜짝 등장한다.

좀처럼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박진영을 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이제는 가수보다 프로듀서와 경영자로서의 역할이 더 커진 만큼 인터뷰의 상당 시간이 JYP의 현 상황과 미래에 대한 얘기에 할애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무모한 도전에 박수? 거짓말이더라.

-데뷔 20주년이 기분이 어떠한가.

이제 겨우 5, 6년 된거 같은데 벌써 20년이라니. 아마도 밀크뮤직에서 공연 제안을 안했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것 같다.

-지난 20년간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는 언제인것 같은가.

2008년 미국에서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가 내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했던 때 같다. 지난 2004년에 거의 빈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가능성을 봤다. 당시 아는 형의 차고에 방 한칸 얻어서 생활하며 미국 시장에 도전했는데 2004년부터 3년 연속 빌보드 톱10 앨범에 곡을 실으며 국내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국내에서 돈을 들고 나가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 준비했는데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진 것이다.

-리먼 사태의 타격이 컸나.

미국의 4대 메이저 음반사 주인은 다 금융인들이다. 2008년 리만 사태로 금융 회사들이 무너지니까 모든 음반사가 위험성이 높은 모든 프로젝트를 멈추라고 지침이 떨어졌다. 따라서 2009년 라인업 중에 리스키한 것은 다 중단됐는데 그 위험한 거 1위가 다 내가 준비했던 것들이었다. 동양인을 데리고 미국에서 뭐를 한다는게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절망이란 것을 느꼈다.

-인생에서 느낀 첫 절망이 34세 때이면 상당히 늦은 건데.

물론 그전에도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있었지만 대부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리먼 사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차원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더니 무모한 도전으로 회사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비난도 받아야 했다.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용기에 박수를 친다고 하던데 다 거짓말이더라. 그건 결과가 좋았을때의 얘기일 뿐이었다.


★지난 3년, 내가 한 일은 결정을 안하는 것

-지금 JYP는 어떤 상황인가?

나는 어차피 미국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 쓴 돈과 시간을 다 날린 것이다. 우리는 미국에서 잘됐으면 하루 아침에 한국을 훨씬 넘어서는 회사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반대로 한국에서 추락을 하게 됐다. 그때 정말 고민과 고뇌를 많이 했고 이걸 오히려 기회로 삼자고 위로했다. 왜냐면 3등 일때만 할 수 있는, 잘 못나갈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더라. 미국 음반사들의 운영 방식을 해봐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SM, YG하고 다른 접근 방식으로 10년 뒤를 보고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이 '어떻게 대량 생산이 가능할까'였다.

-대량생산은 무슨 의미인가?

콘텐츠의 대량 생산이다. 왜냐하면 원래 갖고 있는 시스템으로는 최고로 잘되어야 시가 총액 1조 벽을 넘지 못할 것 같더라. 왜냐하면 지금 시스템으로는 아무리 SM, YG라고 해도 한달에 1개, 1년에 12개의 콘텐츠를 만드는데 그친다. 그래서 어떻게하면 내 개인의 감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화를 해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 했다. 그래서 지난 3년간 한 것은 내가 어떻게든 결정을 안내리는 것이었다.

-3년간 결정을 하나도 안했나.

보면 알겠지만 나는 거의 음악을 안썼다. 그리고 소속 가수들의 타이틀곡 결정도 내가 거의 관여를 안했다. 나에게 가장 컸던 충격은 스티브 잡스가 죽고 애플 주가가 반토막 나는 것을 본 것이었다. 사실 JYP는 SM과 YG에 비해 나 하나에 의존하는게 컸다. 이걸 극복하려면 내 개인의 감의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이 결정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JYP는 지금 위기인가.

남들이 볼때는 충분히 뭐…. 물론 지금 제가 나서서 곡을 쓰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내가 나서면 지난 3년간의 실험이 의미가 없어진다. 난 '과연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시스템화 할 수 있을까' 실험하는 지금이 아주 재미있다.


★연기? 재미있으면 또 할 것!

-지난 20년 중에 제일 뜻깊었던 순간은.

제일 큰 사건은 지난 2004년 윌 스미스의 앨범에 내 곡이 실렸을 때이다. 그때는 믿어지지 못할 정도로 좋은 일이 일어나서 '운이 뭐지?'란 생각이 시작됐고 반대로 2008년도에는 리먼 사태라는 너무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서 '젠장 운이 뭐지?'라고 생각했다.

-박진영의 지난 20년은 운이 따랐나.

데뷔 하고 처음 5년간은 내가 한 거에 비해 결과가 안나와 답답하고 억울했다. 그도그럴것이 다른 가수들과 경쟁을 하는데 나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고 말하니까 팬클럽이 없어져 버리더라. 그래서 무슨 투표나 엽서 집계에서 항상 질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우리 집앞에는 팬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나니 나를 남자가 팬은 사라지고 내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만 남더라. 이들은 내가 결혼을 하든 뭘하든 안떠나더라. 그때부터 내가 열심히 했더니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10년째 되던 2004년 윌 스미스 앨범에 내 노래가 실리고 그 앨범이 빌보드 4위까지 갔다. 아시아 작곡가의 곡이 빌보드 톱10 앨범에 곡을 수록한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결과가 과한데? 운이 과한데?'라고 느꼈다.

-작곡한 노래 중 1위를 한게 42곡인데, 가장 마음 속에 남는 곡은.

감정적으로 가장 좋은 곡은 '너뿐이야'다. 내가 제일 만들고 싶었던 곡은 모니카의 '비포 유 워크 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 같은 노래였다. 그런 노래 한 곡만 쓰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 곡과 비슷한 노래가 '난 여자가 있는데'였다. 멜로디는 멜로디대로 있는데 그루브가 있어 춤도 출 수 있었다. 이 곡을 부를때 처음으로 완벽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너뿐이야'가 멜로디도 조금 더 좋고 리듬도 더 좋다.

-그동안 음악 외에 연기에도 도전했는데. 앞으로도 그런 계획이 있나.

나는 무슨 일을 선택할때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재미 있느냐'이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것은 다 할 것이다. 선택할 때 연기가 재미있을 것 같으면 하는 거다. 또 농구가 재미있으면 '우리 동네 예체능'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동네 예체능'은 지난 20년 중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녹화를 앞두고는 전날부터 잠을 못잤을 정도다.

-스스로를 딴따라라 했는데, 훌륭한 딴따라 였나.

그건 내가 60살 때이 되었을 때 판단할 문제라 본다. 그때도 20살 때와 같은 춤실력을 갖고 있고, 노래를 가장 잘한다면 훌륭한 딴따라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목표가 없다는 아마도 나는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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