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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도 드라마의 한 장르다. 이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막장드라마에 대한 거부감이나 비판적 목소리도 이전보다 훨씬 누그러졌다. 불륜, 복수, 출생의 비밀, 재벌의 탐욕, 신분상승 욕구, 선악구도 등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요 설정들이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갔다'는 의미에서 '막장'이란 단어가 붙었지만, 요즘엔 '막장'과 '흥미롭다'를 동일시하는 시청자도 많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혹은 '욕받이 드라마'라는 풀이가 있듯, 막장드라마가 중장년층의 여가 생활에서 담당하는 사회적 기능 또한 인정할 만하다. 한때 석탄업계에서 '막장'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격세지감처럼 느껴진다.
이야기에 개연성이 있었느냐 여부는 이 드라마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지 못한다. 애초에 개연성을 담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뚜렷한 선악구도 안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됐다. 예컨대 양모 혜옥의 비뚤어진 모정과 그런 혜옥과의 인연을 끊지 못하는 장보리의 효심은 열혈 시청자들에게도 이해 불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장보리는 끝까지 착한 캐릭터로 남기 위해 자신을 학대한 양모와 화해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의 설득력이 떨어졌다. 후반부 들어서 장보리 캐릭터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주요 인물들은 연민정의 모략에 당하거나 그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오로지 악녀 연민정의 몰락과 착한 사람들의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캐릭터가 편의적으로 소모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황당무계한 결말은 '왔다 장보리'가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를 다루고 소비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뇌손상을 입어 친딸 연민정을 알아보지 못하는 혜옥은 동네 누렁이를 '민정'이라 불렀다. 연민정은 그런 식으로라도 좋으니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면서 국밥집 시절의 장보리처럼 머리 모양까지 바꿨다. 시청자 사이에선 '견(犬)민정'이란 우스개소리가 나왔다. 문지상의 새 연인은 연민정과 닮은꼴 민소희였다. 김순옥 작가의 전작 '아내의 유혹'에서 눈 밑에 점 찍고 돌아와 복수를 펼친 민소희 캐릭터의 패러디. 곧바로 '점민정' 또는 '연민점'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왔다 장보리'는 비록 악녀였지만 근성이 있었던 연민정을 나락까지 떨어뜨리고 놀림감으로 만들어버렸다. 응당 치러야 할 죗값이라기보단 오히려 '인격 훼손'에 가까웠다.
극심한 시청률 가뭄 속에 '왔다 장보리'의 맹활약은 '막장드라마=흥행보증'이란 공식을 더욱 견고히 했다. 단맛을 본 MBC는 내심 축제 분위기다. 그러나 막장드라마의 인기를 한국드라마의 부흥으로 해석하지 않듯, 막장드라마를 통해 얻은 수확이 한국드라마의 질적 성장으로 이어질 거라 보는 시각도 없다. 방송사들이 참신한 스토리 개발이나 신인 작가 양성에 쏟아야 할 노력 대신, 손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막장드라마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흥행(막장) 작가들에게 기회가 집중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네티즌들 사이에 퇴출운동까지 벌어졌던 '오로라 공주'의 임성한 작가는 불과 10개월 만에 새 드라마 '압구정 백야'로 최근 컴백했다. '왔다 장보리' 이후 막장드라마에 대한 편중은 더 심화될 거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왔다 장보리'는 막장드라마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존재 가치'는 증명하지 못했다. '흥행보증'이 존재의 이유는 될 수 있으나 존재의 가치는 될 수 없다. 비난을 도맡아야 할 희대의 악녀가 주인공보다 사랑받았다는 이유로 박수 받으면서 떠날 자격을 얻은 건 아니다. 어느 때보다 막장드라마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