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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산에 미친 트레커의 시속 2km 세계여행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4-08-04 09:03


사진제공=지식공간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라 탐험기다. 이 세상에 나와 있는 가이드북 어디에도 이런 여행은 소개돼 있지 않다. 오직 산(山)을 찾아서 대륙과 대양을 넘나드는 300일간의 여정. 협곡을 건너고 가파른 비탈을 올라 정상으로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루트가 탐험가의 발걸음처럼 거침이 없다. 그래서 책 제목도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다.

멀쩡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저자 김동우 씨는 서른다섯 나이에 그간 미루고 미뤘던 장기 해외여행을 감행한다. "너 지금 행복하니?" 모든 일은 이 질문 하나에서 비롯됐다.

휴직을 주겠다는 회사의 제안까지 뿌리치고 "요단강을 건너는 심정"으로 사직서를 냈다. 퇴직금은 고스란히 여행을 위한 종잣돈이 됐다. 보험과 적금과 자동차도 정리했다. 뺨 맞을 각오로 부모님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만 해도 '헉헉' 소리 날 정도로 험난한데, 저자는 더한 모험을 계획한다. 산에 미친 트레커답게 산과 산을 연결해 자신만의 루트를 짠 것. 이 루트에서 도시는 그저 산을 오르기 위해 머무는 베이스캠프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관광지나 유적지도 홀대 받긴 마찬가지다.

그렇게 중국을 시작으로 중동과 아프리카를 거쳐 남미와 북미로 이어지는 낯선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중국 호도협과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같은 유명 트레킹 코스도 있지만, 파키스탄 울트라메도우와 페리메도우, 요르단의 와디 무지브 협곡, 에티오피아 시미엔산 등 비교적 덜 알려진 트레킹 명소들에도 부지런히 발길이 닿았다. 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매료될 만큼 경이로운 풍경들이 책장 곳곳에서 독자를 유혹한다. 저자에게 잠시 영혼을 맡기는 상상을 더해서 풍경 사진을 바라보면 감격이 배로 커진다.

저자는 트레킹을 '시속 2km 여행'이라고 정의한다. 산길을 따라 걷는 속도가 2km다. 그렇게 느리게 걸으며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싶었다고 한다. 인생에서 1만원보다 1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여행 방식이다.


사진제공=지식공간
그럼에도 저자는 여행 중에 빠져들기 쉬운 '낭만'을 애써 경계한다. '나만 아는' 감상은 늘어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여행의 목적마저 잊게 만드는 황당하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을 무수히 쏟아낸다. 격식화된 여행에선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순도 100% 리얼 체험기다.

사람과 짐과 담배연기로 뒤엉킨 채 비포장도로를 곡예하듯 달려가는 중국의 버스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충격이었다. 이집트의 악명 높은 사기 행각은 알고도 당할 수준이라 저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탄자니아에선 말라리아에 걸려 여행 최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때때로 자신이 원해서 올라간 산이면서 배낭이 무겁다고 투덜대고 '내가 왜 이 짓을 하지?'라며 번뇌(?)에 휩싸이는 모습은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위트와 풍자는 물론 '셀프 디스'까지 서슴지 않는 저자의 이야기는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 유쾌하다.


그러나 이런 황당 사건들 끝에는 동경해 마지않던 산과 뜻밖의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 호도협에서 바라본 차마고도의 놀라운 비경, 야딩에서 만난 티베트의 전통 장례의식 '천장', 파키스탄 사람들의 순수한 친절, 시나이산에서 만난 여성과의 핑크빛 로맨스 등 잊지 못할 순간들이 책장에 차곡차곡 쌓여 여운을 남긴다. 또한 저자는 독자들을 위해 트레킹 장비와 여행 준비 방법, 트레킹 명소의 코스와 특징, 숙박시설 평가와 교통편도 책에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용감하거나 혹은 무모하거나…. 저자를 바라보는 두 시선이 공존할 것이다. 책을 읽은 후 전자에 가까운 심정이 든다면, 이제 당신도 훌쩍 떠날 때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사표를 쓰고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훌쩍 떠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그래서 보고 싶지만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책'이라는, 어느 독자의 한 줄 서평에 무한한 공감을 표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자가 드디어 남미-북미편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1권에는 아프리카까지의 지구 반 바퀴 여정이 담겼고, 남미-북미편은 2권에 담긴다. 그곳에선 또 어떤 사건들이 벌어졌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한동안 '글 감옥'에 갇혀 산고를 겪을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애타게 2권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탈고해 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김동우 지음 / 지식공간 / 1만 6500원)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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