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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드라마 때문에 말이 많다. SBS 수목극 '별에서 온 그대'. 방송 2회만에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만화 '설희'의 강경옥 작가가 직접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강 작가의 입장은 단호했다. 하지만 대중의 의견은 "표절이 맞다"와 "강 작가가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로 엇갈린다. 톱스타 커플인 전지현과 김수현을 내세워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가 정말 '설희'를 표절한 것일까?
그러나 '별에서 온 그대' 측의 주장대로 세부적인 인물 설정이나 구성엔 분명 차이가 있다. 독자에 따라 "두 작품을 다 봤지만,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을 베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두 작품은 모두 광해군 일기 속 역사적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광해군 일기에는 광해군 1년(1609) 8월 25일 간성과 원주, 강릉에서 오전 10시께 이상한 물체가 발견됐다는 글이 실려 있다.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 매력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허구의 이야기들을 덧붙인 것. 모티프가 같은 탓에 표절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표절이다", "아니다"로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긴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딱딱 떨어지는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다. 결국 주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번 표절 논란을 계기로 좀 더 명확한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선덕여왕' 케이스에 비춰보니
'별에서 온 그대'에 앞서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또 다른 인기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MBC 드라마 '선덕여왕'. 시청률 40%를 넘는 등 높은 인기를 얻었던 이 드라마는 뮤지컬 '무궁화의 여왕, 선덕'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건은 결국 법정까지 갔다. 뮤지컬 제작사 측이 "저작권 침해로 입은 손해 2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에서 재판부는 '선덕여왕'의 손을 들어줬다. "두 작품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성격도 서로 다르다"는 것. 하지만 2심에서 이것이 뒤집혔다. "전체적인 줄거리가 일치하고 인물의 갈등 구조 등이 상당히 동일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180도 달라진 데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1심 재판부는 "대본이 유출됐다는 증거가 없고, 드라마 작가들이 대본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낮다"고 했지만, 2심에선 "'선덕여왕' 작가들이 드라마 대본 집필 전 선덕여왕과 관련된 이전의 제작물을 모두 검토한 것으로 보아, 대본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선덕여왕' 측이 드라마 방영 전 '무궁화의 여왕, 선덕'의 대본을 실제로 보고 참고했을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표절 판정에 영향을 미친 것. '선덕여왕'의 김영현 작가는 당시 "작품 집필 전 '무궁화의 여왕, 선덕'의 대본을 작품 집필 전에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별에서 온 그대'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이 사건이 법정으로 가게 된다면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가 이 드라마를 집필하기 전 '설희'를 봤느냐 아니냐가 중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박지은 작가는 "저는'설희'라는 만화를 접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지만, 강경옥 작가는 "박지은 작가는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을 안 하시나 봅니다. 검색만 눌러도 연관된 것들이 나올 텐데 말이에요"라는 말로 맞섰다.
상처만 남은 싸움
논란이 쉽사리 잠잠해지질 않고 있다. 강경옥 작가는 "1월에 변호사분들을 만나서 자문과 의견을 듣고 어쩔지를 정할 예정입니다"라며 법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건이 법정까지 간다면 더욱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양 측의 팽팽한 대립은 상처만 남기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별에서 온 그대'는 방송 초반부터 논란에 휩싸이며 드라마가 삐그덕대는 인상을 주고 있다. 전지현과 김수현을 캐스팅하는 등 야심차게 출발했던 드라마지만, "표절 드라마일지도 모른다"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가게 됐다. 표절 논란이 불거진 이상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입장. 여기에 최근엔 소설 '유성의 연인', 영화 '맨 프롬 어스'와도 내용이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곤욕을 치첬다.
강경옥 작가에게도 '이득이 되는 싸움'이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론이 악화되는 모양새다. 일부 네티즌들은 영화 '진용'과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오히려 강경옥 작가가 '설희'와 '진용'과의 표절 의혹에 대해 먼저 해명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을 다른 누군가가 표절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정당한 배상을 받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받게 될 상처가 만만치 않을듯 싶다.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