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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연예인 조공의 천태만상…변질된 스타 사랑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3-03-11 08:17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박시후가 팬들로부터 고가의 선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릇된 '연예인 조공 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공'은 종속국이 종주국에게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는 일을 뜻하는 단어지만, 팬덤에서는 스타의 생일이나 제작발표회, 콘서트 등을 기념해 선물을 주는 것을 일컫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굳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스타와 그의 동료, 매니저, 스태프에게 간식이나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이제 연예계에서 흔한 일상이 됐다. 연예 관계자들은 "팬들의 과도한 선물 공세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규모가 더 커지고 있어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입을 모았다.

밥차부터 수억대 생일파티까지 '천태만상'

가장 기본적인 조공 형태는 먹을거리다. 보약이나 홍삼을 직접 달여서 보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방송사 대기실과 촬영장에 100~200인분의 도시락이나 밥차를 수시로 보낸다. 최근에는 커피차와 분식차도 등장했다. 선물을 받은 스타는 그 답례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고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음식의 가격은 종류마다 천차만별인데, 도시락의 경우 전복이나 소고기 같은 고급재료가 들어가면 1개당 수십만원을 훌쩍 넘긴다.

스타 개인에게 보내는 조공으로는 고가의 명품이 가장 많다. 명품 신발, 가방, 의류는 기본이고 자전거, 와인, 최신형 노트북도 인기 조공품이다. 걸그룹 A의 경우 명품 가방 안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담긴 선물을 받았고, 남성 아이돌그룹 B의 한 멤버는 콘서트에 찾아온 일본팬으로부터 1700만원대 시계가 담긴 선물 상자를 받기도 했다.

가수들이 받는 선물 중에는 수천만원대 음향장비도 빠지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아이돌 멤버가 방송에 출연해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만 하면 팬들이 부리나케 장비를 사서 보낸다"며 "숙소를 옮긴다는 소식을 들으면 팬들이 소속사에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가전제품과 가구를 바꿔주는 일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때론 외제차나 오토바이 같은 선물을 받는 경우도 있다. 차량은 워낙 고가인데다 스타 개인의 취향도 고려해야 해서, 사전에 매니저를 통해 스타에게 원하는 차종을 물어본다. 과한 선물은 돌려보내는 '개념' 스타도 많지만, 간혹 스타가 은근히 요구하기도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아이돌 출신 가수 C의 팬들은 공연장을 빌려 생일파티를 개최했다. 대관료와 무대 설비, 음향 장비, 경호, 선물, 식사비 등을 모두 합치면 어림 잡아도 비용이 수억대다. 한 가수 매니저는 "당시 경호업체가 팬클럽으로부터 경호를 의뢰받고는 '팬들이 돈을 모아서 하면 얼마나 하겠나'라며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이자, 그 팬클럽 운영진이 '공지 띄우고 한 시간만 지나면 현금이 억 단위로 모인다'고 말해 놀랐던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총알 쏴주세요"…조공은 어떻게 이뤄지나


보통 조공은 팬클럽 운영진의 주도 아래 여러 팬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뤄진다. 제작발표회나 콘서트 일정이 잡히면 팬카페에 "총알을 쏴달라"는 공지글이 올라온다. 여기서 '총알'은 조공을 위한 현금을 뜻하는 용어로, 총알을 쏴달라는 건 통장에 입금해달라는 의미다. 팬미팅 같은 행사는 일정 금액의 회비를 걷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조공은 정해진 금액이 없다. 각자 내고 싶은 만큼 '성의'를 보이면 된다. 이는 곧 '상한가'가 없다는 얘기다.

조공을 마친 뒤에는 팬클럽 운영진이 지출 정산 내역을 정리해 영수증과 함께 팬카페에 공개한다.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간혹 운영진이 개인 사비로 쓴 영수증이 발견돼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걸그룹 D의 팬카페 운영자가 조공 명목으로 1000만원 가량을 걷은 뒤 잠적한 일도 있었다. 한 배우 매니저는 "팬클럽 운영진이 갑작스럽게 바뀔 때는 조공과 관련된 정산 문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밥차와 도시락을 보낼 때는 물론이고 개인적인 선물을 보낼 때도 대부분 소속사와 사전에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그래야 전달 과정에 착오가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니저가 팬들의 조공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이 부지기수다. 한 아이돌그룹 매니저는 그 일로 소속사에서 해고되기도 했다.

경제력이 있는 30~40대 팬들과는 달리, 나이 어린 10대 팬들은 조공에 참여하기 위해서 부모에게 손을 벌리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조공 참여 여부에 따라 팬카페 회원 등급에 차등을 두기 때문이다. 게시물을 열람하거나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조공 참여 같은 몇 가지 수칙들을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돌그룹 E의 소속사는 조공 문제 때문에 10대 팬들의 부모로부터 수차례 항의전화를 받기도 했다.

과열 경쟁이 기부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조공 경쟁이 과열되는 것도 문제다. 팬덤은 보통 공식팬클럽, 양대 포털사이트의 팬카페, 갤러리, 나이대별 팬카페 등으로 나뉘어 활동하는데, 이 팬덤끼리 조공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한류스타 F의 경우 팬카페끼리 밥차 조공 경쟁이 붙어서 끼니 때마다 촬영장으로 식사가 배달됐다"며 "팬들의 조공이 스태프를 먹여살렸다고 농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스태프까지 챙기는 팬들의 정성이 고맙고 예쁜 건 사실이지만 과한 조공은 스타는 물론 스태프에게도 적잖은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쓸모가 없어지는 화환을 대신해 등장한 쌀화환은 조공의 좋은 본보기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연탄화환이나 망고화환도 등장해 행사가 끝난 후에 좋은 곳에 쓰인다. 쌀화환은 스타들의 기부 문화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쌀을 얼마나 기부했느냐를 놓고도 경쟁이 벌어진다. 제작발표회를 예로 들면, 상대 배우보다 더 많은 쌀을 기부함으로써 우리 배우가 더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얼마나 쌀화환을 보낼 것인가를 놓고 눈치작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쌀화환 최고 기록을 두고도 경쟁을 펼친다. 아이돌그룹 G의 경우, 각 멤버들의 팬덤이 쌀화환 최고 기록을 번갈아 가면서 경신하고 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쌀화환 업체는 소속사를 통해 스타가 원하는 단체에 쌀을 기부하고 그 내용을 팬카페와 소속사에 알린다. 그로 인해 스타의 선행을 알게 된 팬들이 스타와 관계없이 꾸준히 그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례도 있다"며 "과도한 선물은 스타에게 전달되기 전에 소속사 차원에서 정중히 거절해 예기치 못한 문제를 사전에 막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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