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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르네상스다. 2012년 극장가를 한국영화가 점령했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53.4%였다. 지난해 상반기 한국영화 점유율(48%)에 비해 높은 수치다. 또 '도둑들'은 '해운대' 이후 3년 만에 1000만 영화에 등극했다. 역대 1위 '괴물'의 기록(1301만 9740명)도 갈아치울 태세다. 한국영화가 신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영화 관계자들은 올해 한국영화가 "고정관념을 뒤엎었다"고 말한다. 2012년 한국영화가 '깨부순' 것들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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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해 들어 이런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졌다. '건축학개론'이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지난 3월 개봉한 이 영화는 역대 멜로 장르 흥행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410만명의 누적관객수를 기록했다. 이 기세를 '내 아내의 모든 것'이 그대로 이어받았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인 이 영화는 45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법정 드라마 '부러진 화살', 재난 영화 '연가시', 사극 '후궁: 제왕의 첩', 스릴러 장르인 '이웃사람'과 '공모자들' 등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포진했다. 한국영화가 장르적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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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엔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다. 과거엔 한 두 명의 유명 스타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그 뒤에 몇 명의 조연을 포진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원톱 영화' 또는 '투톱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올해엔 얘기가 다르다. 여러 명의 주연을 무더기로 출연시키는 영화가 눈에 띈다.
올해 최고의 흥행작인 '도둑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영화엔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등이 출연한다. 다른 영화에선 다들 '원톱' 내지 '투톱'으로 주연으로 맡을 수 있는 배우들이다. 이런 배우들이 한 데 모여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웃사람'도 마찬가지. 김윤진, 마동석, 천호진, 김성균, 김새론, 임하룡, 장영남, 도지한 등이 출연한다. '도둑들'과 달리 김윤진을 제외하면 기존 영화에서 '원톱 주연'을 맡았던 배우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김윤진의 비중은 오히려 적은 편이다. 이 배우들이 모두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원톱 주연'의 시대가 가고 '무더기 주연'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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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엔 '의외의 캐스팅'으로 눈길을 끈 경우가 유독 많았다. '은교'의 김고은은 '혜성 같이 나타난 신예'로서 화제를 모았다. 영화 출연 경력이 한 번도 없는 '생짜 신인'을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한 건 파격적이었다. 김고은은 17세 소녀 은교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이후 각종 광고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등 충무로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차형사'의 성유리도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된 주인공이었다. 까칠한 성격의 디자이너 역. 평소 단아하고 얌전한 이미지였던 그녀가 이 캐릭터에 캐스팅된 것은 의외였다. '5백만불의 사나이'에 박진영이 캐스팅됐던 건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가수로선 최고의 위치에 올랐지만, 배우로선 '초보 중의 초보'다. 드라마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영화는 처음이었다. '5백만불의 사나이'는 그런 그를 '원톱 주연'으로 내세웠다. 흥행엔 실패했다. 하지만 다양한 배우가 충무로에서 할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이밖에 '코믹 황제' 임창정은 '공모자들'을 통해 진지한 역할을 맡았고, 차태현, 민효린, 이병헌은 데뷔 후 처음으로 사극 영화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의외의 캐스팅'은 한국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줬다.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