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칵테일] 남자들에게 필요한 또 한 명의 여자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1-10-16 16:20


[에로틱칵테일] 남자들에게 필요한 또 한 명의 여자

남녀 관계에서 '남자 측' 공식은 매우 단순하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면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연락을 먼저 해오지 않거나 뜨뜻미지근하게 나오면 '당신에게 반하지 않은 것'이며 반하지도 않았으면서 끈적하게 주위를 맴돌면 단순히 자고 싶은 것이다. 내가 연애 관계에서 헷갈릴 때마다 정리를 깔끔하게 해주고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참 고마운 공식이었다. 나에게 '반한' 남자와 연애하고, 미적지근한 남자는 일찌감치 기대심을 버리고, 끈적하게 주위를 맴돌면 즐기거나 애초부터 무시하면 됐다.

그런데 처음에는 '좋아한다, 사귀자' 하고 하룻밤 같이 잔 후에 '잘 모르겠다, 이 관계 다시 생각해보자' 하고는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고 종종 연락을 해오는 E군에 대해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분명 그는 나에게 반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종종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하고 그렇다고 스킨십을 시도한다거나 어떻게든 단 둘이 남아 있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그의 연락을 무시하고 피해다니는 것이었다. 간밤에도 모임자리에 그가 오기 전에 도망가려는데, 그만 문 앞에서 딱 마주쳤다. 한 달 반 만의 재회였던가. 그를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아주 담담하면서 아프지 않게 그날에 대해 늘어놓으려고 했다. "여자는 말이에요, 그렇게 쉽게 남자에게 마음을 안 열어요. 나는 당신의 유혹과 진심에 어렵게 마음을 열었지만 이내 당신은 그게 실수였다고 했어요. 쿨하게 나도 실수였다고 어색하지 않게 지내자고 말했지만 왜 마음을 열었을까, 왜 그렇게 쉽게 오케이 했을까, 난 왜 결국 그런 여자가 됐을까 아주 오랫동안 후회했어요. 이렇게 나를 후회하게 하는 상황이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당신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나는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당장 화색을 띠더니 정말 괜찮다고 하는 나를 굳이 집까지 데려다주고 우리에게 '그런 일'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다정하고 또 매력적으로 나를 대하는 것이다. 그가 말했다. "얼마 전에 '공무도하'라는 책을 봤거든요, 거기 주인공 문정수라는 남자랑 노목희라는 여자가 나오거든요. 그거 보면서 선배 생각 많이 했어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 선배랑 그런 관계가 되고 싶어요."

나도 그 책을 봤다. 그녀는 주인공의 아는 여자로서, 문정수가 야근을 마친 새벽에 찾아와 혼자 중얼거리듯 늘어놓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몸과 마음으로 주인공을 위로해주는, 그렇다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연인도 아닌 캐릭터다.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라고? 너에게만 도움이 되는 관계겠지! 난 남녀 관계에서 미처 채 확인되지 못한 그리고 극소수의 남자에게서만 발견되는 새로운 '공식'을 발견했다.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애인으로 두고 싶지는 않은, 자기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성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스트레스와 고뇌를 들어주고 해소해주는 '여자'. 남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더불어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를 갖고 싶어한다!

이런 이기적인 남자들 같으니라구. 그의 속내를 안 것도 동시에 나 역시 명확해졌다. 분명한 건, 내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를 돕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안녕, 우리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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