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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지 이번 한예슬의 '스파이 명월' 촬영 불참 사태가 다시 한번 불합리한 시스템을 확인시켜줬을 뿐이다.
더욱 큰 문제는 늘 이런 위태로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시스템 변화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송사에서는 실패의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사전 제작'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동안 방송된 사전 제작 드라마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위험부담을 안으려 하지 않고 있다. 제작사의 입장에서도 굳이 방송사에서 원하지 않은 일은 추진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같은 이유로 현재도 대부분의 드라마가 '생방송' 제작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시청자에게 돌아간다. 스태프들은 늘 촉박한 제작 스케줄에 애를 태우고 연일 밤샘 촬영을 하니 교통사고까지 끊이질 않는다. 배우들은 잠은 커녕 대사 외울 시간도 부족하다. 상황이 급박해져도 방송사는 시청자와의 약속보다는 '결방'을 결정하면 된다는 식이다.
때문에 사전 제작이 힘들다면 "'반 사전 제작' 시스템이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 사전 제작'이란 방송에 돌입하기 전 절반 정도의 촬영 분량을 확보해 놓는 것을 말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 구조상 처음부터 완벽한 사전 제작을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반 사전 제작을 정착시키고 차츰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우선 '반 사전 제작'이 정착되면 무리한 스케줄로 인한 펑크 사태나 교통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 역시 어느 정도 담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시스템은 방송사와 제작사간의 어느 정도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다. 눈 앞의 나무보다는 큰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