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원하늘숲길트레킹

스포츠조선

[김형중의 오픈스테이지] 라이선스 뮤지컬의 애매한 역사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1-06-16 11:07


지난 2008년의 일이다. 옥주현과 빅뱅의 대성 등이 출연했던 뮤지컬 '캣츠'가 공연될 때 작은 해프닝 하나가 있었다. 홍보문구에 삽입된 '라이선스 초연'이라는 표현이 발단이었다.

많은 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국내배우들이, 그것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배우들이 출연했던 '캣츠'를 과거에 분명히 봤는데 왜 새삼스레 초연일까. 그럼 과거에 봤던 그 '캣츠'는 무엇일까.

사실 이유는 분명했다. 제작사는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하는 공연은 그때가 처음이라 '초연'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었다. 이전에 했던 '캣츠'는 계약을 맺지않고 무단으로 한 것이라 공식 역사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이 있었음에도 과거 '캣츠'에 관여했던 스태프와 출연했던 배우들은 당시 '초연'이라는 표현에 굉장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어찌됐건 자신의 땀과 열정으로 만들었던 작품이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캣츠' 뿐 아니라 10여년 전까지 국내에서 공연된 대부분의 외국뮤지컬은 다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다. 비단 공연계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법 관념이 깊게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관례적으로 번역해 무대에 올렸던 것이다. 제작자들은 용케 악보를 구하거나, 아니면 외국에 가서 공연을 보면서 채보하기도 했다. 열정만 놓고 보면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컴컴한 극장에서 볼펜 하나 들고 노트에 멜로디를 하나하나 기록했으니.

80년대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던 '아가씨와 건달들'과 '넌센스'도 이런 맥락에 있었고, 심지어 조승우 류정한 등이 출연했던 '라만차의 사나이'는 60년대 후반에 국내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공연을 초연으로 인정하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런 사연이 있기에 뮤지컬 역사나 기사를 쓸 때 굉장히 애매한 경우가 많다. 당시 무대를 채웠고, 수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국내 뮤지컬 발전에 기여를 했던 수많은 작품들을 평가하고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지금도 배우들의 프로필을 보면 2000년 이전에 공연됐던 '캣츠'와 '넌센스' 같은 작품들을 출연작으로 다 명기하가고 있다. 또 '아가씨와 건달들'이나 '넌센스' 같은 작품은 공연 횟수도 굉장히 많아 '○년간 ○천회'라는 기록이 있지만 이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도,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정식 라이선스의 역사는 지난 1997년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시작됐다. 당시 삼성영상사업단이 의욕적으로 공연사업에 뛰어들면서 최초의 라이선스를 맺었다. 국내 공연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이후 뮤지컬시장이 확대되고 해외 프러덕션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정식 계약을 맺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외국에서는 1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진 과정이 한국에서는 20, 30년 안에 속성으로 벌어진 것이다.

'아가씨와 건달들'이 8월 새롭게 공연된다. 80년대 뮤지컬의 대명사로 불렸던 작품이다. 해외작품이기는 하지만 왠지 이런 사연이 있기에 느낌이 좀 다르다.
엔터테인먼트팀 telos21@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