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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전윤수 영화칼럼] 내 마음 울린 송혜교의 전화 한 통

임정식 기자

기사입력 2011-06-03 14:02 | 최종수정 2011-06-03 14:02



영화 <베사메무쵸>는 제 데뷔작입니다. 2001년에 개봉했지요. 이후 추진된 차기작은 첩보 액션 장르인데 시나리오 작업에 3년 반이라는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제작은 무산됐고 <쉬리2>라는 가제를 갖고 있던 그 작품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3년 반, 작품에 종지부를 찍던 그날 아내가 울더군요. 아쉬워서 우느냐고 물으니 억울해서 운다고 했지요. 남편이 겪는 창작의 스트레스를 가장 근거리에서 가장 리얼하게 지켜봤으니 오죽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나에겐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배낭 싸들고 홀로 떠나고 싶었지만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혼자 떠나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만난 작품이 <파랑주의보>입니다. 일본 원작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리메이크하는 작품이죠. 송혜교와 차태현이 출연 결정을 했고, 주요 촬영 장소는 거제도가 선택됐습니다. 약 두 달간의 거제도 촬영은 지쳐있던 내게 커다란 위안이 됐습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배우 송혜교와 좋은 배우 차태현. 그리고 거제도의 놀라운 풍광은 지난 시간의 고통을 말끔히 잊게 해줬습니다.




내 인생에서 2005년 여름. <파랑주의보>를 찍던 그해 여름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 여름을 같이 경험한 혜교씨와 태현씨는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아름답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그 여름 혜교씨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매물도 언덕 끝에 서서 꽃씨를 뿌리는 모습과 하늘색 교복을 입고 자전거에 올라탄 모습은 아직도 가슴을 설레게 하죠.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했고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뜬금없이 전화해 그때 고마웠다고 말하기 어려워 이 글을 통해 마음을 전합니다.




거제도의 여름이 지나고 겨울에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관객들이 <파랑주의보>를 극장에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첫날부터 교차 상영의 피해자가 되더니 곽경택 감독님의 <태풍>에 쓸리고 피터 잭슨의 <킹콩>에 사정없이 밟히고 말았죠. 무대 인사는 취소되고 극장 갈 맘도 안 생겨 집에만 있는데 늦은 저녁 혜교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출연한 배우들끼리 모여 술자리를 했나본데 목소리가 떨리더니 이내 울먹이더군요. "감독님. 우리 영화 어떡하죠?" 평소 지나치리만큼 어른스러운 그녀가 울먹이니까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렀던 나도 가슴이 무너지더군요. 이때 태현씨가 전화를 뺏어들고 애써 유쾌한 목소리로 날 위로했지만 그때 떨리던 그녀 음성은 아직도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파랑주의보>는 감독과 송혜교, 그리고 차태현 각자의 작품 중에서 가장 흥행을 못한 작품으로 기억될 겁니다. 하지만 생애 가장 행복하게 촬영한 작품이 <파랑주의보>가 되길 바랍니다. 관객에게는 잊혀졌지만 우리에게만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작품 하나쯤 갖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영화감독·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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