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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의 오픈스테이지] 모방에 관대한 사회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1-06-02 12:07 | 최종수정 2011-06-02 12:08


세상에 완벽한 창작이란 없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고, 아무리 독창적인 작품이라 해도 형식이나 내용에 과거의 유산이 담겨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모방은 제 2의 창작'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모방이 제 2의 창작이라고 해서, 남의 것을 그대로 갖다써도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기존의 훌륭한 작품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자기 식으로 해석해 새로운 뭔가를 덧입히라는 뜻이지, 수영이나 붓글씨를 배울 때처럼 똑같이 따라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최근 TV에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있다. 한 케이블 방송의 '슈퍼스타 K'가 대히트를 기록하자 지상파 방송에서 너나할 것 없이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내보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사회가 이런 모방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의외로 관대하다는 것이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팽배해서인지 처음에만 비난 여론이 들끓다가도 곧 '감동의 도가니'에 흡수되고 만다. 이런 경향을 잘 알고 있는 제작자들로서는 '시청률만 올라가면 만사 OK니 초반만 버티면 된다'는 판단을 내리기가 쉽다.

예능프로 뿐 아니라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히트하면 비슷한 포맷의 드라마, 영화, 연극이 쏟아져 나온다. 모성애를 소재로 한 소설이 히트하자 엇비슷한 내용의 영화, 연극이 봇물 터진다. '강요된 감동과 재미'의 작품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토양이 조성되는 것이다.

'모방은 제 2의 창작'이라는 말과 관련해 최근 뮤지컬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 눈에 띈다.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창작뮤지컬 '원효'이다.

신라의 고승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창작 초연치고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탄탄한 스토리에 화려한 세트,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객석의 반응이 아주 뜨겁다. 그러나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와 '지킬 앤 하이드' 같은 해외 히트뮤지컬이 자연스럽게 '데자부'된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 굉장히 기술적으로 잘 녹여내긴 하지만 몇몇 장면은 너무 흡사해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한 번 더 걸러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품의 좋은 점을 잘 수용했을 때는 '영향을 받았다'고들 한다. 예컨데 '명성황후'는 처음 외국에 진출했을 때 '한국의 에비타'라고 소개됐다. 역사의 격랑에 휩싸인 여걸의 이야기라는 점이 비슷했고, 그것을 한국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난타'는 외국에서 시작된 넌버벌 퍼포먼스라는 장르에 사물놀이 리듬을 입혀 우리 식으로 재탄생시켰기에 호평을 받았다.


어디까지가 영향을 받은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베낀 것인지의 경계는 사실 애매하다. 표절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가요계에서도 결국 마지막에 하는 말은 '작곡가의 양심의 문제'라는 것이다.

모방이 제2의 창작이라고 할 때 그것은 창조적 모방을 의미한다. 창작자들의 자세가 일차적으로 중요하겠지만 '재미만 있으면 모든 것을 용서하는' 세상의 분위기도 창작자들의 단순 모방을 방조하는 요인인 듯 하다. 엔터테인먼트팀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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