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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돌풍을 기대하라."
경기 종료 3분41초전 65-82로 크게 뒤진 상황에서 전창진 KT 감독이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모비스가 아무리 올시즌 우승후보 1순위라지만 이런 점수차라면 호랑이 전 감독에게 용납하기 힘든 열세다.
하지만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대신 "이기자고 주문하는 게 아니지 않는냐. 10점차까지 좁힐 수 있도록 집중하자"고 담담하게 주문했다.
KT는 올시즌 개막 이전 6강 플레이오프에 포함될 전력으로 평가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의 대어 장재석(21·2m3)을 잡은 덕분에 한숨을 돌렸지만 포인트 가드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두 용병의 위력도 다른 팀에 비해 떨어진다.
이제 시작이지만 2경기 모두 패한 것은 어찌보면 예상됐던 결과다. 전 감독이 객관적인 전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베스트5를 A팀, B팀 2개로 나눠 무더기 교체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승부에서 유독 자존심이 강한 전 감독도 마음을 비우고 올시즌을 맞이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다고. 전 감독의 우울한 심정을 달래주는 선수가 있다. 신인 장재석이다.
현재까지 장재석은 미완의 대기다. 13일 오리온스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프로에 데뷔해 20분53초동안 10득점, 3리바운드, 2가로채기로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이튿날 모비스전에서는 12분52초간 4득점, 3리바운드로 신인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전 감독은 고작 2경기의 성적으로 장재석을 평가하는 게 아니다.
우선 정신자세부터 전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초 전 감독은 장재석을 시즌 초반에 곧바로 투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난 7개월 동안 대학농구리그를 치르느라 자신의 적정체중(103∼105㎏)에서 10㎏이나 빠져있었다. 중앙대의 준우승에 기여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장재석의 열정이 천하의 전 감독을 이겼다.
전 감독은 "어린 녀석이 어떻게 해서든 컨디션을 올려놓을테니 개막전부터 뛰게 해달라고 투지를 보이는 자세를 보고 기특했다"고 말했다. 개인 기량보다 조직력, 선수 개인의 정신자세를 중요시하는 전 감독에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장재석의 기량도 전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 감독은 "막상 훈련을 시켜보니 기본기가 잘 된 선수다. 트랜지션(공-수의 빠른 전환)에 능한 데다, 슈팅 감각도 좋아 크게 기대한다"면서 "서서히 프로에 적응하면 지난 시즌의 오세근 버금가는 재목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특히 전 감독이 장재석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것은 '멘토'인 서장훈(38·2m7)이 장재석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서장훈은 팀 훈련중 시간이 날 때마다 장재석을 붙잡고 세밀하게 노하우를 전수한다.
코트에서는 역할 분담을 해야 하는 신-구세대의 융화를 보는 것만 해도 전 감독에겐 또다른 즐거움인 것이다.
전 감독은 "장재석이 삼촌같은 선배 서장훈에게 제대로 배우고 있으니 신인 돌풍을 일으킬 날도 크게 앞당겨 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즌 초반 최하위인 KT가 마냥 우울하지 않은 이유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