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스페셜 게임 LA 다저스와 키움 히어로즈 경기. LA가 14-3으로 승리했다. 경기종료후 홍원기 감독과 로버츠 감독이 악수하고 있다. 고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4.3.17/
[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저희도 지금 처음 밟아보는 거라…."
키움 히어로즈 홍원기 감독은 지난 1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복잡미묘한 심경을 드러냈다.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최강 전력, 최고 인기팀이다. 당장 '7억달러의 사나이' 오타니 쇼헤이가 있다. 오타니, 무키 베츠, 프레디 프리먼 등 전 세계 야구팬들이 사랑하는 슈퍼스타들과 경기를 해본다는 자체로 설레는 일이다.
홍 감독도 세계적 명장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감독으로서 맞대결을 펼친 이날 하루는 일생일대의 추억이 될 만 했다. 실제 그는 "이렇게 큰 축제에 함께 하게 돼 큰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키움 히어로즈 최주환이 1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된 LA 다저스와 연습경기 4회말 1사 2루 LA 다저스 라이언 브레이저를 상대로 1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고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4.3.17/
하지만 고척돔 잔디 얘기가 나오자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고척돔은 이번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서울시리즈'를 앞두고 대대적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인조잔디를 최고 품질로 싹 바꿨고, 구장 내 조명도 LED로 설치했다. 고척돔을 홈으로 쓰는 키움 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닐까. 홍 감독은 "잔디가 바뀌어 좋은가, 선수들은 어떤 반응인가"라는 질문에 "저희도 지금 처음 와본 거라"라고 답을 유보했다. 감독으로서의 걱정이 녹아있는 망설임이었다.
키움은 이번 서울시리즈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오랜 기간 구장을 통째로 내줬다. 시범경기도 전혀 치르지 못했고, 경기는 커녕 연습도 못했다. 바뀐 홈구장이니, 적응 훈련이 필요한데 정작 구장 주인인 키움은 아무 것도 해보지 못했다. 이제 시즌 개막이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스페셜 게임 LA 다저스와 키움 히어로즈 경기. 다저스가 14-3으로 승리한 가운데 양팀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4.3.17/
더욱 억울한 건 시설 개선을 위해 돈을 쓰지 않던 서울시가, 메이저리그가 온다니 많은 돈을 썼는데 원정팀 쪽 시설에만 집중 투자를 했다는 사실이다. 정작 키움이 쓰는 라커룸과 식당 등 홈 시설은 전혀 건드리지도 않았다.
'대의'를 위해 희생을 했는데, 키움에 돌아오는 직접적 혜택은 미약한 실정이다. 심지어 다저스에 홈 라커를 내줘, 이날 경기 준비는 지하 회의실에서 해야했다. 내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처지.
그래도 홍 감독은 "모두의 축제를 위해 이런 희생은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자칫 시즌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기에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키움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좋았던 이미지가 처참한 경기력으로 희석되고 말았다. 이날 키움은 다저스에 3대14로 대패했다. 전력 차이가 매우 큰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 졌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2024' LA 다저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연습경기가 진행됐다. 7회말 2사 1,2루에서 키움 홍원기 감독이 송성문의 2타점 적시 2루타 때 득점을 올린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24.03.17 고척=정재근 기자cjg@sportschosun.com/2024.03.17/
하지만 전 세계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볼넷을 11개나 내주며 수준 떨어진 경기를 펼친 부분은 아름답게 포장하기 힘들다.
손윤기, 김윤하, 김연주 등 프로 무대에 데뷔도 안한 생 초짜 신인 선수들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주겠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키움도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프로 구단인만큼 최소한의 선과 자존심은 지켰어야 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이 만난 빅리그 최고 타자들. 주눅들지 않을 수 없었다. 스트라이크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게 안쓰러울 정도였다.
두 번째 투수 손윤기가 크게 흔들릴 때 빨리 교체를 해줬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끌고 가다 경기가 한순간에 기울어져 버렸다.
개막이 코앞이기에 선발 요원들까지 끌어다 쓰는 건 무리일 수 있지만 김재웅, 문성현 등 경험 있는 필승조를 아낀 부분이 아쉽다. 시범경기 일정 등을 고려했고, 이들이 나왔어도 경기 흐름을 완전 바꾸기는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고 경기장을 찾은 키움팬들에게 뭔가 해보고자 했다는 메시지는 줄 수 있었다. 가장 강한 불펜 조상우도 큰 의미가 없는 9회에 나왔다.
한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시즌 개막전을 앞둔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LA 다저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스페셜 매치가 열리고 있다. 고척=정재근 기자cjg@sportschosun.com/2024.03.17/
설상가상 다저스는 주전급 선수들을 총출동 시키며 예를 다해 키움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강타자 프리먼은 무려 7타석을 소화했다. 개막전 직전 실전 준비 과정이기에 전력을 다 한 측면도 있겠지만, 처음 만나는 한국팬들과 상대 키움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느껴졌다. 다저스는 그라운드를 밟은 모든 선수가 전력질주를 하고, 모든 플레이 최선을 다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고척돔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