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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이전보다 더 내 공을 믿고 던진다."
두산 베어스 크리스 플렉센(26)은 '미완'으로 KBO리그에 입성했다. 뉴욕 메츠 유망주 투수로 손에 꼽히던 그는 트리플A에서 맹활약을 펼친 후 빅리그에 데뷔했지만 기대만큼 이상적이지 못했고, 결국 20대 중반에 한국이라는 새로운 무대 도전에 나섰다.
냉정하게 성적으로만 보면 그 기대치에 못미치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7월 중순 타구에 맞아 발 안쪽 뼈가 골절되는 부상으로 2개월 가까이 경기에 뛰지 못하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플렉센의 입지는 더욱 위태로워졌었다. 하지만 부상 이후 플렉센은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의자에 앉아서 공을 던질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그리고 타자들과의 승부, 마운드 위에서의 마인드 컨트롤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
9월초 부상에서 복귀한 플렉센은 3~4경기까지도 잘 풀리지 않았다. 구위는 부상 이전만큼 좋았지만, 커맨드가 흔들리면서 무너지거나 결정구를 얻어맞는 상황이 반복됐다. 9월 복귀 후 4경기 무승.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플렉센은 당시를 돌아보며 "솔직히 부상 전의 등판들은 만족스럽지 못했었다. 그래서 재활을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경기 운영이나 육체적,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코치님들과도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상의했다"고 이야기했다.
9월 22일 한화전에서는 6이닝동안 13개의 삼진을 잡고도 결정적 홈런을 맞는 등 4실점 하며 패전 투수가 됐던 기억이 있다. 이 경기가 플렉센이 마음을 다시 다잡게 된 계기였다. 김태형 감독은 "한화전이 끝나고 플렉센을 불러 물어봤다. 오늘 어떤 부분이 안됐던 것 같냐고 하니 이상하게 한화전에서 너무 잘 던지려다가 꼬이는 게 있었다고 하더라. 네 공을 믿고 던지라고 이야기했다. 자신감있게, 피하는 승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을 했다.
플렉센은 "감독님 이야기가 맞다. 그렇다고 내 공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후 내 공을 더 믿고 던지게 됐다"면서 "부상 복귀 이후 등판한 경기들의 내용이 더 좋아서 스스로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플렉센은 10월들어 가장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4경기에서 3승무패 평균자책점 1.08. 압도적인 성적이다. 7이닝 무실점을 2차례나 할 정도로 자신의 구위를 100% 활용하고 있다. 20일 부산 롯데전에서는 7이닝동안 3안타 12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최고 호투를 펼치며 승리 투수가 됐다.
플렉센은 "오늘 제구도 잘되고, 공이 좋다는 걸 알았다. 포수 박세혁이 잘 캐치하고 원하는 대로 공격적으로 이끌어줬다.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어놓고 공격적인 승부를 펼치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기뻐했다. 수월해보이지만 플렉센은 이날 투구를 마친 후 마운드에 내려와 녹초가 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다. 1승, 1경기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났다.
팀 동료이자 한국야구 선배인 라울 알칸타라는 부상 없이 풀타임을 뛰어 현재 다승 경쟁(18승) 중이다. 알칸타라의 존재가 플렉센은 '라이벌 의식'이 아닌 '버팀목'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알칸타라가 굉장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칸타라와 경쟁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좋은 기운을 옆에서 보고, 받고 있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 잘 도와주는 관계다. 호세(페르난데스)도 너무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셋이서 좋은 케미스트리를 만들어가면서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자신감을 더한 플렉센이 가을 무대에서도 펄펄 난다면, 두산의 전망은 더욱 밝아진다. 2년 연속 정규 시즌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베어스의 가을은 이제 시작이다.
부산=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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