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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승부할 줄 알고 기다렸다."
누구나 그 상황이라면 고의 4구로 만루 작전을 펼쳤을 것이다. 두산 베어스 배터리와 김태형 감독의 19일 고척 넥센전 연장 10회말 선택은 정석이었다.
두산의 정석을 무너트린 건 이날 내내 부진하던 김하성이었다. 야구는 이런 면에서 오묘하고 흥미롭다. 어쩌면 그런 깊은 부진이 두산의 만루 작전 선택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선택에 따른 정석이 결국 김하성에 의해 무너졌다.
이날 김하성은 이전과 달랐다. 계속 타석에서 서두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결국 1회부터 9회까지 정규이닝 중에 네 차례 타석에 나와 무안타로 침묵했다. 1회에 삼진 3회에는 우익수 뜬공, 6회에 다시 삼진. 그리고 8회말에는 또 우익수 뜬공. 정확도가 너무나 떨어져 있었다. 두산 벤치가 김하성을 10회말 위기에서 타깃으로 삼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4로 맞선 10회말. 두산이 믿고 내보낸 함덕주가 흔들렸다. 선두타자 이정후에게 좌전안타. 송성문에게 희생번트에 이어 3번 서건창에게도 우전안타. 순식간에 1사 1, 3루에 몰렸다. 그리고 타석에는 4번 타자 박병호가 들어설 차례. 이날 박병호는 1회말 1타점 적시타를 날린 바 있다. 이후 삼진 2개와 볼넷 1개를 추가했다. 썩 좋은 페이스는 아니었지만, 끝내기 상황에서 그 어떤 타자보다 무서운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박병호의 뒤에는 4타수 무안타에 삼진 2개로 기를 펴지 못하던 김하성이 있다. 박병호를 거르고 김하성과 정면승부. 두산이 택한 전략은 모범답안에 가까웠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게 김하성을 자극했다. 김하성은 "벤치에서 보니 그 상황에 박병호 선배를 거르고 나와 승부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 속을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쳐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하성의 예측은 현실이 됐다. 그러다 보니 김하성은 더 준비된 상태로 타석에 나갈 수 있었다. 수비진의 위치도 보였다. 김하성은 "(타석에서 보니) 두산 내야진이 앞으로 들어와 있더라. 그래서 타구를 강하게 맞히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함덕주의 초구 체인지업을 강하게 받아 쳤다. 정타는 아니었지만, 운이 따랐다. 원바운드 타구가 함덕주의 머리를 넘어 센터로 굴러가면서 끝내기 안타가 됐다.
김하성은 "빗맞은 타구가 빠지면서 행운의 안타가 됐다. 앞선 타석들의 결과가 좋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으며 '마지막 기회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기회가 왔고, 또 좋은 결과로 이어져 기쁘다"며 끝내기 소감을 마무리했다.
고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