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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스토리] 치열한 경쟁의 세계, 그들이 형제 선수로 사는 법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8-04-12 15:42 | 최종수정 2018-04-12 22:09


◇함께 포즈를 취한 최 정(오른쪽)-최 항 형제.  스포츠조선DB

프로야구에서 피를 나눈 형제가 함께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SK 와이번스 간판타자 최 정(31). 그가 지난 시즌부터 야구 실력 외 다른 쪽으로 주목받은 게 있다. 바로 친동생이다. 최 정의 동생은 같은 팀 내야수 최 항(24)이다. 그는 2012년 신인 드래프트 2차 8라운드에서 SK 지명을 받았다. 지난 시즌 전까지 단 한 번도 1군을 경험하지 못했다. 무명선수였다. 이 때문에 둘의 관계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트레이 힐만 감독의 눈에 든 최 항이 지난해 1군에 데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37경기에 출전해 가능성을 알렸다면, 올해는 1군 선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2경기에서 35타수 13안타, 타율 3할7푼1리. 아직 붙박이 2루수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최근 그의 팀 내 입지는 매우 탄탄하다.

형과는 스타일이 다르다. 최 정은 3년 연속 홈런왕을 노리는 슬러거. 최 항은 우투좌타로 뛰어난 컨택트 능력을 자랑한다. 이제는 최 정의 동생이 아닌, SK 2루수 최 항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최 정은 형제의 활약에 쏟아지는 관심에 "우리 형제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기분이 좋다. 오래오래 형제가 그라운드에서 활약하며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정은 이어 "형제가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다만, 동생 일은 내 일과 마찬가지다. 늘 가까이에 있으니 나도 모르게 챙겨야 할 일이 많아 조금 힘든 점은 있다"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밖에서는 형, 동생이지만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는 선수 대 선수로 대하려 한다"며 프로 선수로서 동생과 한 팀에서 생활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아무래도 동생은 형보다 부담이 조금 덜하다. 최 항은 "형은 우타자인데 나는 좌타자다. 초등학생 때 팀에 좌타자가 없어 왼쪽 타석에 서게 됐는데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훌륭한 형을 둬서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전혀 그런 게 없다. 형과 함께 이름이 거론되면 기쁜 마음 뿐이다. 팬들께서 우리 형제 얘기를 많이 해주시니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요즘은 형이 따로 말을 안해도 눈빛으로 통하는 느낌이 있다. 형은 항상 차분하게, 흥분하지 말고 늘 같은 마음으로 경기와 훈련에 임하라고 조언해 준다"고 덧붙였다.

최 정과 최 항처럼 형제(쌍둥이 포함)가 함께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한 사례가 적지 않다. 형제가 모두 1군 경기에 출전한 경우는 지금까지 총 25쌍이 있다. 아직 1명이라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형제가 11쌍, 나머지는 모두 은퇴한 선수들이다.

현역 중에는 박세웅(롯데)-박세진(KT), 조동화(SK)-조동찬(삼성), 유원상(NC)-유민상(KIA), 고영표(KT)-고장혁(경찰) 등이 대표적이다. 고영표는 "형과의 추억이 많다. 내가 투수고 형은 야수이기에 서로에게 조언할 수 있어 너무 좋다. 늘 서로의 단점에 대해 지적해주는 사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마음 편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라고 했다.
◇나성범(오른쪽)과 나성용(당시 LG 소속) 형제.  스포츠조선DB
NC 다이노스 간판타자 나성범은 지난해까지 형 나성용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으나, 형이 은퇴해 경찰 야구단 코치로 있다. 둘은 2015년 6월 2일 적으로 만나 한 경기에서 함께 홈런을 터뜨리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나성범은 "형이 더 오래 선수로 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제 지도자가 된 만큼 지도자로 오래 활약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형제가 같은 팀 소속으로 한 경기에 함께 출전하거나,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같은 날 경기에 출전한 사례는 제법 있다. 하지만 형제가 상대로 만나 싸운 적은 딱 두 번이다. 먼저 소개할 사례는 2016년 4월 27일 수원에서 여린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 이 날 박세웅과 박세진 모두 출전했다. 하지만 박세웅은 선발이었고, 박세웅이 내려간 후 박세진이 중간투수로 등판해 맞대결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박세웅(오른쪽)-박세진 형제가 기념촬영을 한 모습.  사진제공=KT 위즈
진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형제가 있다. KT 정명원 투수코치(52)다. 정 코치는 현역시절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정 코치의 동생 정학원씨(50)가 프로야구 선수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형제는 1995년 9월 5일 전주구장에서 열린 쌍방울 레이더스와 태평양 돌핀스의 경기에서 투-타 맞대결을 벌였다. 동생 정씨가 9회말 대타로 나와 형을 상대했다. 결과는 유격수 땅볼.

정 코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동생이 타석에 들어섰지만, 봐준다는 생각은 없었다. 프로는 팀이 먼저 아닌가. 내야 땅볼을 잡은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정 코치는 "동생과 고등학교, 대학교(군산상고-원광대)도 함께 다녔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유격수인 동생이 나보다 훨씬 야구를 잘했다"며 "프로에 와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우리팀 경기만 아니면 동생이 안타를 치라고 늘 마음속으로 응원했다"고 했다. 또 "당시에는 지금처럼 구단 운영이 체계적이지 않다 보니 선수하다 군 복무를 하면 사실상 선수 생활 끝이었다. 동생은 쌍방울에서 2년을 뛰다 군대에 갔고, 돌아와 잠깐 야구를 하다 그만둬야 했다. 지금은 고향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이밖에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양승관-양후승 형제는 1985년 4월 9일 MBC 청룡-삼미 슈퍼스타즈전에 삼미 소속으로 동일팀 첫 형제 야수 선발 출전 기록을 세웠다. 둘은 이듬해 7월 31일 청보 핀토스전에서 첫 형제 홈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동생이 먼저 홈런을 때린 형의 대타로 출전해 또 홈런을 쳤다.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윤동배-윤형배 형제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총 5경기에 형제가 동시에 등판했다. 한화 이글스 레전드 투수 구대성(은퇴)의 친형도 프로 야구선수였다. 우완 투수인 구대성의 친형 구대진은 1991년 쌍방울 소속으로 7경기에 등판했다. 현재 대전 제일고 야구부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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