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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6개로 나뉘어진 코칭스태프 보직 가운데 가장 중요한 파트를 꼽으라면 단연 투수코치다. 투수코치는 감독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 위치에 있으며 감독의 결정에 가장 깊숙히 관여한다. 투수 출신이라는 '전문성'을 십분 발휘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 투수코치는 선수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투수들 중 예민한 성격을 지닌 선수들이 많은데, 투수코치의 말 한마디가 선수에게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도 있다.
롯데 자이언츠 조원우 감독(46)은 지난해 시즌이 끝난 뒤 당시 SK 와이번스에 몸담고 있던 김원형 코치(45)를 불러들였다. 조 감독은 2015년 10월 롯데 사령탑에 오를 때부터 김 코치 영입에 공을 들였는데, 1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한 살 어린 김 코치는 전주고 졸업 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해 프로 경력은 고려대를 거친 조 감독보다 3년 빠르다. 조 감독이 1994년 쌍방울에 입단하면서 인연이 시작됐고, SK에서는 선수와 코치로도 한솥밥을 먹었다. 조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후배가 김 코치이고, 김 코치가 가장 따르는 선배가 조 감독이다. 올해 김 코치에게 수석코치까지 겸하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 코치는 지난해 마무리 캠프부터 투수들의 보직을 나누고 시스템화하는데 공을 들였다. 마운드가 좋아지지 않고서는 성적을 낼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은 조 감독은 김 코치에게 투수 관련 권한을 모두 부여하면서 곁에 두고 모든 조언을 받아들였다. 조 감독은 포스트시즌 진출이 기정사실화된 요즘 "김원형 코치가 투수들을 잘 짜놓아 성적이 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 코치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1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김 코치를 만났다. 인터뷰가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치던 김 코치는 "내가 한 것은 없다. 모두 선수들이 잘 해준 것 뿐"이라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롯데 투수들의 강점에 대해 "자질이 좋은 젊은 투수들이 많고 모두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했다.
올시즌 롯데는 선발투수 2명을 확실하게 키워냈다. 박세웅이 토종 에이스로 성장했고, 김원중이 풀타임 선발 첫 시즌 100이닝 이상(107⅓이닝)을 던졌다. 두 투수 모두 경험이 적다보니 시즌 막판 체력적인 부분에서 한계를 보이기도 하지만, 롯데는 향후 10년 이상을 책임질 선발 재목 2명을 확실히 건져올린 셈이다.
김 코치는 "내가 와서 특별히 한 것은 없다. 고참 투수들은 해온대로 하면 된다고 했고, 어린 투수들에게는 투구폼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줬다. 투구폼 쪽으로는 이용훈 (불펜)코치와도 생각이 일치한 부분이 많았다. 선수들 역시 받아들이는 자세가 좋았다"고 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처음부터 잘 이뤄졌다는 이야기다.
외국인 투수 브룩스 레일리와 조쉬 린드블럼에 대한 신뢰도 깊었다. 김 코치는 "레일리의 경우 전반기 한때 안 좋아 체인지업 속도를 좀 줄이는 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본인도 2군을 다녀오면서 인지하고 있었다고 하더라. 제구와 직구가 워낙 좋은 선수 아닌가. 린드블럼도 KBO리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 후반기 로테이션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두 투수는 포스트시즌서 '원투 펀치'로 활약해야 한다. 시즌 막판 등판 스케줄도 포스트시즌에 맞춰 잡을 계획이다.
김 코치는 투수들이 큰 부상없이 시즌을 버틴 점을 강조했다. 그는 "투수들이 부상이 없으니까 가동 인원에 여유가 있었다. 일단 (1군서)쓸 수 있는 선수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관리했다. 트레이닝 파트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투수 관리는 조 감독 역시 신중을 기한 부분이다. 전반기 김원중과 박진형을 1군서 잠시 제외하는 등 등판 간격을 조절해줬고, 투구수도 가급적 100개를 넘지 않도록 했다.
김 코치는 "세웅이는 작년에 했었으니까 시즌 초부터 꾸준히 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원중이와 진형이는 투구수를 정해놓고 던지게 했다"면서 "반전은 송승준이다. 작년 팔꿈치 수술을 받고 올해 이렇게 해줄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원중이와 진형이가 부침이 있을 때 승준이 들어오면서 자리를 잘 잡아줬다"며 시즌을 돌아봤다.
또 김 코치가 젊은 투수들을 향해 칭찬한 것은 사생활 부분이다. 전혀 걱정하지 않고, 문제도 없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선수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사생활에 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야구가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는 건 좋지 않다. 선수들도 잘 안다"면서 "세웅이, 원중이, (박)시영이, 진형이 (장)시환이 모두 걱정하지 않는다. 방향성은 스스로들 인지하고 있고 난 도와주는 역할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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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원중이는 작년 캠프와 올초에 포크볼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부상 걱정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안던지는 것이었는데 구종이 단조로우니까 자꾸 맞아서 한 번 던져보라고 했는데 재밌다고 하더라. 그 뒤로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투수진 분위기가 김 코치에 의해 안정적으로 형성되면서 롯데는 투타 밸런스가 맞아나가기 시작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 코치는 지난해 롯데로 옮기게 된 사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사실 조 감독과의 의기투합을 더 원한건 본인이라고 했다. 김 코치는 "1999년 쌍방울 시절 야구가 안될 때가 있었다. 그때 감독님은 고관절 수술을 받고 병원에 계셨다. 병문안 가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그때부터 친해졌다"면서 "작년에 (감독님에게)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도 언제 한번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하고 싶은 사람하고 같이 해야하지 않나. 부산엔 아무 연고도 없는데 여기에 온건 순전히 감독님 때문이다"며 웃었다.
부산=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