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용의 일구일언(一球一言)] 나쁜 의도는 없는 규정 위반, 배영수 딜레마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7-08-24 00:43



"비겁한 승부 한 적 없습니다."

한화 이글스 배영수가 남긴 말이다. 배영수는 23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취재진 앞에 섰다. 배영수는 20일 대전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로 나섰다가 한순간 추락했다. 경기 도중 글러브, 유니폼 하의 허벅지 부분에 로진 가루를 묻혔다. 그리고 거기에 공을 문질렀다. 심판도, 상대팀도, 중계진도, 기자들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중계 화면을 유심히 보던 한 야구팬이 영상을 편집해서 인터넷상에 올리며 논란이 커졌다.

처음에는 수면 아래서 얘기가 퍼졌다. 그러다 22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이 문제에 대한 공식 언급을 했다. 배영수의 부정투구가 맞다는 것이었다. 경기 전 KBO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배영수의 입장을 전해들을 수는 없었다. 이상군 감독대행은 "아직 영상을 못봤다"고 말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배영수가 나섰다. 본인이 먼저 요청을 했든, 구단에서 선수에게 요청을 했든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알려진 건 사과를 위해서라고 했다. 배영수는 "일단 잘못했다. 사죄드린다. 다 내 잘못이다. 많이 반성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변명하지 않겠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한화 관계자는 "질문을 받지 않고, 사과 메시지만 말하는 선에서 끝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내면 이 사과는 너무 형식적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선수가 이번 논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있는 지 들어보는 게 맞았다.

취재진의 질문에 배영수도 입을 열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질문을 듣고 깊은 한숨도 내쉬었고,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기도 했다. 배영수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나도 부정투구를 인정한다. 하지만 비겁한 승부는 하지 않았다"다.

배영수는 "계획적으로 의도를 갖고 행동을 했다고 하는 게 답답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본인도 중계 화면을 봤을 것이니, 여기서 부정투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큰일이었다. 야구 규칙 '투수의 금지사항' 항목에는 '공을 글러브, 몸 또는 유니폼에 문지르는 행위'는 안된다고 정확히 명시돼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를 언급했을 것이다.

배영수의 답답함도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만약, 배영수가 옛날 방식처럼 미끄럼 방지를 위해 몰래 바세린을 바른다거나 변화를 더 주기 위해 공에 흠집을 내는 등의 부정 행위를 했다면 매우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경기 외적 요소로 구위를 향상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크게 보면 약물 사용 등의 사례도 있다. 완벽한 상대 기만이다. 하지만 로진은 어떤 투수나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다. 손에 로진 가루를 바르고 싶은만큼 바르고 공을 잡으면 된다. 원하면 수시로 바꿔주기도 한다. 배영수의 경우 그 로진을 글러브, 유니폼 하의에 발라놓고 거기에 공을 문댔다. 일반적으로 던지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 게 없다. 그 행동으로 인해 얻어지는 심리적 안정 효과를 노렸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일종의 습관.

배영수가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증거들이 모아지고 있는데, 그런 사례가 많았음에도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건 이를 알기 때문에 상대쪽에서도 크게 어필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상대팀들은 승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은 요소들까지도 '매의 눈'으로 항상 찾고 있다. '이 정도는 우리 투수들도 할 수 있다'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배영수의 부정투구를 옹호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규정을 위반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KBO는 다시 비슷한 일이 발생되면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만약, 이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못한다면 또 다른 규정 위반 사항이 나왔을 때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피해갈 구멍이 생길 수 있다.

정말 나쁜 의도가 없는 행동이었다는 건 알겠다. 그래도 규정 위반은 위반이다. 그래서 이번 배영수 논란이 어렵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도 비슷한 논란에 휘말릴 투수들이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사소한 동작 등으로 모두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 프로야구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스포츠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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