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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러브요? 솔직히 올해 중 그날 술을 가장 많이 마신 것 같아요."
국내 2루수 최초로 2년 연속 20홈런. 값진 기록을 자신이 이정표가 되어 다시 썼지만, 골든글러브 수상이 불발된 그날 밤은 술로 쓰린 속을 달랬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우리 팀도 더 성장해야겠다"고.
신년을 이틀 앞둔 12월 30일. 수원 경수대로에 위치한 한 일본 음식점에서 박경수를 만났다. 딸 둘 그리고 아내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막 마치고 돌아온 그는 유쾌했고, 생각에 무게가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개인 훈련 갈 준비를 한다. 1월초에 사이판으로 가는데, 당분간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니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사이판에서 돌아와서 구정 보내면 바로 미국 스프링캠프 시작이다.
-비시즌도 바빴다. 시상식도 많고.
11월은 괜찮았는데, 12월초부터 평일에는 시상식, 주말에는 결혼식 일정이 몰아쳤다. 선수협 총회도 있어서 굉장히 바빴다.
-선수협에 일이 굉장히 많다고 들었다. 한 번 모이면 몇 시간씩 회의가 길어진다고.
일이 많다. 한달에 한 번 이사회를 하는데, 한번 모이면 5시간씩 기본적으로 하는 것 같다. 각 팀 대표들이 모이는 거라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들이 많다. 보통 일이 아니다. 회장 이호준 선배가 고생 많이 하고 계신다.
-인터뷰 장소로 일식 전문점을 선정한 이유가 뭔가.
이쪽에 선수들이 밥을 먹으러 자주 모인다. 원정팀 숙소로 쓰는 호텔도 가까워서 다른 팀 선수들과도 자주 모인다. 이 가게가 눈에 띄어서 왔었는데 맛있더라. 근데 건물이 너무 오사카 스타일이라 광복절에는 못 올 것 같다(웃음).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이나 즐기는 것이 따로 있나.
예전는 육류를 많이 좋아했다. 올해부터는 고기보다 회 종류가 더 당긴다. 깔끔하기도 하고 배가 많이 부르지 않아서 좋더라.
-원래 호리호리했던 체격을 일부러 키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내 색깔의 야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도루를 많이 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우리 홈구장이 우타자에게 조금 유리해 힘을 키워보자고 생각했는데 효과를 봤다.
-'벌크업'에 좋은 음식도 있나.
시즌 중에는 여름 되기 전에 장어즙을 먹는다. 비타민이나 아미노산 같은 영양제도 챙겨 먹는다.
-보약은 도핑 때문에 굉장히 조심해서 먹어야 하지 않나.
장어즙은 광주에 있는 친형이 '올여름에 많이 덥다는데 한번 먹어봐라'고 권해줘서 먹기 시작했다. 그쪽 연락처를 받아서 전화해서 '저 운동선수인데 도핑 걸리면 책임지실 겁니까'라고 몇 차례 확인해서 먹기 시작했다. 기름기가 많아서 살이 찐다. 근데 결과가 좋으니 또 먹게 되더라(웃음). 이번 여름(2016년)에는 먹다가 조금 남겼다. 살이 계속 찌길래 '더이상 먹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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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미네소타)와 굉장히 절친한 사이인데.
병호가 중학생일 때부터 알았다. 병호가 영남중, 나는 성남고 학생이었다. 성남고와 영남중이 전지훈련을 같이 가게 됐다. 병호는 그때 이미 지금 덩치였다. 얼굴은 그때가 더 나이 들어 보였다(웃음). 별명이 삼촌이었는데, 가장 튀더라. 방망이를 고등학생들보다 훨씬 잘 쳤으니까. 우리 감독님이 '쟤는 무조건 잡아 온다'고 하시더니 정말 데리고 오셨다. 내가 고3때 1학년으로 들어왔다.
-고교 시절에는 박경수도 대단한 선수 아니었나.
나는 그냥 팀에서 조금 잘하는 선수였고, 병호는 유명한 선수였다.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의 인연이 깊다. 프로에서는 LG에서 같이 뛰었으니.
예전부터 마음이 잘 맞았다. 잘해준 것도 없는데 병호가 나를 좋아해 준다(웃음).
-'대형 유망주'였던 LG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가.
LG는 좋은 구단이다. 나도 어릴 때 LG 야구를 보면서 꿈을 키웠었고, 유지현이라는 분 때문에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플레이가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LG에 입단했고, 저의 우상과 룸메이트도 해봤었다. 지금 보면 생각을 잘못했던 것 같다. 어리다는 이유로 그냥 코치님들이 지도해주시는 방식에 너무 휘둘렸다. 나만의 것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이지 코치님들이 내게 원했던 모습은 다 똑같았다. 그런데 내가 이해를 못 했다. 병호도 마찬가지다. 우리 둘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고.
-시간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야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 아닐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내가 좀 둔하고 부족했던 것 같다. 그냥 막무가내로 열심히만 했다. 열심히 하고, 많이 해야 성공한다는 이야기들을 하지 않나. 그 말만 믿고 했는데, 이걸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kt에 와서 다행히 좋은 기회를 받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이해가 됐다. 고참 축에 끼다 보니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게 된다. 타격코치님께도 예전과 달리 '이거 왜 해야 합니까? 이걸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게 됐다. 코치님이 다 받아주시니 서로 신뢰가 쌓이고, 믿게 되고, 결과도 좋은 것 같다.
-어렵게, 시간이 걸려서 FA가 됐을 때 새로운 환경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FA 신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냉정하게 내 위치가 고민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하게 됐다. 소문도 있었고. 여기서 변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되겠더라. 대형이형이 제일 친하니까 이야기를 많이 했고, 계약 기간에도 통화를 자주 했다. 형에게는 지금도 정신적으로 많이 배운다. 굉장히 쿨하다 사람이. 쓸데없을 정도로 쿨하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을 할까? 저 형이 주장이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멘탈적으로 배운 점이 많다. 내가 머리가 안 좋은데 생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지금은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빨리 잊으려고 한다. 좋은 것에도 취해 있으면 실망이 더 커진다. 모든 것은 하루로 끝낸다. 그렇게 생각하니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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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러브 후보에 올랐었는데 수상은 못했다(박경수는 37표로 후보 5명 중 4위였고, 상은 넥센 서건창에게 돌아갔다). 경쟁이 만만치 않더라.
경쟁은 2루수 아니라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 아닌가. 근데 그날 솔직히 올해 술을 가장 많이 마신 것 같다.
-아쉬운 기분에?
솔직히 받고 싶은 생각이 컸었다. 다른 후보들도 다 잘했지만 그래도 2~3위 정도만 하면 누가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4위더라(웃음). 그게 속상했다. 우리 팀도 마찬가지지만, 개인적으로도 '아직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보면 기분 좋은 일이다. 10명 중에 1명 주는 상 아닌가.
-눈물이 많은 편인가.
운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운다.
-골든글러브 받으면 눈물이 날까.
눈물 날 것 같은데. 조만간 글러브 협찬해주시는 회사에 금색으로 하나 맞춰달라고 부탁하려고 한다(웃음). 안울게끔 미리 적응하게.
-2017시즌에 kt 성적이 더 좋고, 개인 성적도 좋으면 충분히 재도전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해서 받으면 감사히 받고 아니면 말아야 한다. 욕심낸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수원=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