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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고 바뀌고 또 바뀐 투구패턴. 두산 베어스 더스틴 니퍼트가 호투한 이유다.
1회에는 모든 공(15개)을 직구만 던졌다. 1번 이종욱, 2번 박민우, 3번 나성범의 몸쪽을 공략했다. 알고도 치기 힘든 공이었다. 1회부터 전광판에는 156㎞의 스피드가 찍혔다. 제구도 거의 완벽했다.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박민우-이종욱으로 테이블세터를 구성한 김경문 감독은 둘의 순서를 바꿨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종욱은 7구 승부 끝에 2루수 땅볼, 박민우는 4구째 직구에 투수 앞 땅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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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타순이 한바퀴 돌자 투구 패턴이 바뀌었다. 상대 타자 눈에 익었기 때문에 변화를 준 것이다. 4회 다시 선두 타자로 나선 이종욱. 초구는 바깥쪽 체인지업이었다. 130㎞ 중반대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았다. 이후 풀카운트 승부 끝에 우익수 플라이.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으나 방망이 중심에 맞히지 못했다. 후속 박민우, 나성범도 마찬가지였다. 둘에게 모두 체인지업을 던져 나란히 2루수 땅볼로 요리했다. 힘이 잔뜩 뜰어간 박민우와 나성범은 타이밍을 뺏기고도 공을 잡아 당겨 2루수 쪽으로 타구를 보냈다. 두산 배터리 의도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포수 양의지는 상대의 한 방을 철저히 경계한 볼배합도 선보였다. 박석민, 이호준, 김성욱을 상대로 철저히 바깥쪽 위주의 공을 요구한 것이다. 9개 구장 중 홈런이 나오기 힘든 잠실 구장이라고 해도 언제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테임즈는 예외다. 지난해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그는 유일한 약점이 몸쪽이다. 몸쪽을 던져야 홈런을 안 맞을 확률이 높아진다. 즉 양의지는 거포들에게 '차라리 안타치라'는 식으로 리드를 했다. 안타 3개로 1점을 주는 것보다 솔로 홈런 한 방으로 1점을 주는 게 더 타격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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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경기 중반. 다시 한 번 볼배합에 변화가 찾아왔다. 7회였다. 니퍼트는 1사 후 나성범에게 우전 안타를 맞았다. 볼카운트 1S에서 몸쪽 직구를 잘 붙였으나 타자가 잘 쳤다. 방망이 안쪽에 맞으면서 양 손바닥에 극심한 통증이 왔을 타구였는데, 나성범이 힘으로 이겨냈다. 타석에는 테임즈. 앞선 타석까지 그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두산 배터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초구, 2구, 3구를 모두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던졌다. 역시 큰 것을 맞지 않겠다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볼배합이었다. 결과는 1루수 땅볼. 그런데 여기서 두산 야수의 실책이 나왔다. 땅볼을 잡은 1루수 오재일은 2루로 바로 송구했고, 그 공을 잡은 유격수 김재호가 병살플레이를 하는 과정에서 1루로 악송구했다. 주자는 2사 2루.
흔들린 니퍼트는 박석민 타석 때 와일드 피치를 했다. 박석민은 볼넷으로 내보내며 2사 1,3루가 됐다. 다음 타자는 노림수가 빼어난 이호준. 여기서 다시 한번 니퍼트와 양의지의 호흡이 좋았다. 1구만 바깥쪽 직구로 던지고 2~6구는 모두 바깥쪽 슬라이더였다. 볼넷으로 베이스를 모두 채워도 상관없다는 극단적인 볼배합. 결과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우익수 플라이였다. 이호준은 풀카운트에서 잘 떨어진 바깥쪽 슬라이더를 밀어쳤으나 안타로 연결하지 못했다.
그렇게 니퍼트는 포스트시즌 최다 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갔다. 왜 그가 올 시즌 20승 이상을 거뒀는지, 이날 경기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잠실=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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