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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 김세현에게.
세현씨. 올해는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1년이었지. '커리어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이브 1위 기록 말이야. 하지만 내가 늘 당신에게 하는 말이 있잖아. 당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내가 가장 놀라는 것은 김세현이라는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때야. 결혼하고 2-3년째 되든 해까지만 해도 집에 오면 컴퓨터 게임하기 바빴던 사람이 이제 야구를 재밌어하고 있잖아.
솔직히 야구장에 출근하면 하루 종일 야구 이야기, 야구 생각만 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텐데 굳이 집에서까지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 직장에서의 짐을 집까지 가져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당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잖아. 마지막 공은 진짜 아깝다느니,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다느니. 야구를 즐기면서 한다는 게 보여.
지금도 철이 없지만(웃음)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정말 갑갑했어. 당신에게 내가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딱히 없어"라고 대답하던 그 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지금의 당신은 묻지도 않은 꿈을 혼자 주절주절 이야기하지. 그때 당신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 나는 거기서 우리들의 미래를 보곤 해.
항상 계획 없이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당신을 위해 결혼하고 얼마 안됐을 때 버킷리스트를 같이 작성했었잖아. 지금 다시 보니까 많은 것들을 이뤘더라. 올스타전 참가해보기, 개인 타이틀 1위 해보기 등등. 이게 사는 재미 아닐까. 철없어도 할 일 다 해내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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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에 대해 억울한 오해가 있어도 해명을 하면 논란만 커질 거라 생각했어. 실시간 검색어에 우리 부부 이름이 오르고, 악성 댓글로 도배가 되어있을 때 멘탈이 흔들린 당신을 잡고 내가 이렇게 말했어. "우리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은 야구 하나뿐이야.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방법도 야구뿐이야."
예전에 야구장에 가면, 당신이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이 경기 졌다"며 일어나 집에 가는 관중들을 보곤 했어. 너무 속상하고 분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서 '내가 이 사람 최고로 만들고 말테다'라고 다이어리에 적은 글이 아직 남아있어.
그래도 지금은 김세현이라는 투수가 나왔을 때 예전과는 다르게 안심하는 팬들이 많이 생겨서 정말 다행이야.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더 성장해서,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봉사 활동, 재능 기부로 베푸는 삶을 살자. 백혈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에게 희망이 되고 더불어 우리 아이들에게 훌륭하고 멋진 아빠가 되어주길 바라. 적고 보니 너무 부담을 준 것 같네. 은퇴하는 그 날까지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되길.
당신의 아내 김나나.
정리=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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