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머리에 앉아 억지로 만든 스케줄이다."
프로야구 현장에서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감독 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까지 모두 불만의 농도가 짙다. 폭염 때문에 불만의 강도가 더 커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들이 '열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현장 상황을 도외시한 KBO의 탁상행정'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9일부터 시작된 '2연전 스케줄'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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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린다. 경기 전 두산 선수들이 훈련에 임하고 있다. 선수들의 타격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김태형 감독.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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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KBO리그는 페넌트레이스 막판에 '2연전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경기수가 144경기로 늘어나면서 만들어진 기형적 일정이다. 기본적으로 '페넌트레이스 144경기 체제'에서는 팀간 맞대결이 총 16번 열려야 한다. 그래서 3연전 방식으로 4회씩 홈·원정경기를 치르면 4경기가 남아버린다. 이걸 소화하기 위해 2연전 방식으로 홈·원정경기를 한 차례씩 총 2회 소화하도록 일정을 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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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KBO리그 kt 위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린다. 경기 전 kt 선수들이 훈련에 임하고 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배팅 훈련에 임하고 있는 유한준.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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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어보인다. 두 팀이 똑같이 8번씩 홈·원정경기를 하니까 산술적으로 모든 팀이 공평한 조건에서 시즌을 치르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결코 같을 수 없다. KBO가 공평하다고 생각하며 짠 2연전 일정은 실제로 프로야구 현장에서는 '불합리한 탁상행정'으로 평가되고 있다. 팀별 이동거리에서도 큰 격차가 생기고, 한 주에 수 차례 이동을 반복하면서 선수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경기력도 떨어지고, 심지어 팬들 사이에서도 "혼란스러운 일정 때문에 야구장에 가기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수도권 팀의 A감독은 "2연전 일정을 왜 두 달이나 지속해야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시점에서 계속 2경기씩 끊어 이동을 하다보면 경기력에도 크게 악영향이 생기고 부상자도 속출할 수 있다"면서 "팀간 홈·원정 8차전씩을 똑같이 맞추겠다고 스케줄을 만든 것인데, 굳이 그렇게 '꼭맞는 일정'을 고집해야 하는 지 의문이다. 현실에 맞도록 유연하게 일정을 짜면 안되나. 예를 들어 홈-원정식으로 3연전씩 5번을 하고, 9월에 남은 한 경기 및 우천 취소 경기를 원정팀 홈으로 붙여 편성하거나 아니면 다음 시즌에 해당팀에게 홈경기 일정을 먼저 주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어차피 KBO리그는 연속성이 있다. 꼭 한 시즌 단위로 스케줄을 끊을게 아니라 유연하게 다음 시즌 이후까지도 생각해 편성하면 되지 않나"라고 문제를 지적하며 대안까지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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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열린다. 경기 전 SK 선수들이 훈련에 임하고 있다. 박경완 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재원이 러닝으로 몸을 풀고 있다. 폭염 날씨가 괴로운듯 고함을 치고 있는 이재원. 인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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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팀 B감독은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프로야구 현실에서 144경기 체제를 고집하다가 생긴 현상이다. 선수층이 얇은 상황에서 144경기는 너무 많다. 그리고 이동거리가 미국이나 일본보다 적다고는 해도 우리나라는 대부분 버스 이동이라 소요시간이 길고 피로가 많이 쌓인다. 또 2연전이면 하루 경기 치르고 다음날 짐싸고 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너무 고된 일이다"라며 "분명 올해 초 감독자 회의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했는데, KBO는 현장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다. 심지어 감독자 회의에 참석한 KBO관계자는 회의내용을 적지도 않더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심지어 지방팀 C선수는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 상황에서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2연전씩 끊어다니느라 정말 죽겠다"며 "사무실에서 일정 짠 사람들에게 운동장에 직접 나와 한번 겪어보라고 하고 싶다"며 하소연했다.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키는 일정을 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분명 KBO도 2016시즌 일정을 만드는 데 엄청난 고심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스케줄을 소화하는 현장에서 '합리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확실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당장 올해 스케줄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다음 시즌 이후부터는 이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야 할 듯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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