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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루' 만드는 사나이 정재훈, 그 속내와 비결은

함태수 기자

기사입력 2016-05-31 00:17


17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6 프로야구 KIA와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8회초 KIA 백용환을 중견수 플라이처리 한 두산 정재훈이 포수 양의지와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5.17.

두산 베어스 정재훈(36)은 30일 현재 14홀드로 이 부문 선두다. 공동 2위 이보근(넥센 히어로즈), 윤길현(롯데 자이언츠)보다 4개나 많다. 의외의 결과, 대반전이라는 평가. 캠프 당시 필승조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은 베테랑이 2010년 이후 다시 한 번 홀드왕에 도전하고 있다. 앞으로 체력 관리만 잘 한다면 KBO리그 역대 최고령 홀드왕 기록이 새로 써질 듯 하다.

정재훈이 놀라운 점은 단순히 '많은' 홀드 개수 때문은 아니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 등판해 좀처럼 그 주자의 득점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점이 기대 이상이다. 이른바 '상대 팀의 잔루를 만드는 사나이'. 후배들이 위기에서 바통을 넘겨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책임질 주자가 아님에도 적시타 없이 깔끔하게 이닝을 끝낸다.

지난주 경기가 대표적이다. 두산은 26일 잠실 kt 위즈전에서 우완 불펜 윤명준이 6-2로 앞선 6회 1사 후 등판해 아웃카운트 3개를 잘 잡았다. 하지만 7회 1사 후 2번 오정복에게 중전 안타를, 3번 마루테에게 좌중간 2루타를 허용하며 순식간에 1실점했다. 스코어는 6-3. 계속된 1사 2루. 한 방 능력을 갖춘 4번 김상현, 5번 박경수가 줄줄이 나올 차례였다.

두산 벤치는 서둘러 정재훈을 호출했다. 8회에 등판해 1이닝을 책임지는 게 베스트 시나리오였지만 출격 시기를 앞당겼다. 결과는 단 5개의 공을 던져 이닝 종료. 김상현은 2구만에 3루수 파울 플라이, 박경수는 3구만에 3루수 땅볼이었다. 그는 다음날 잠실 LG전에서도 5-1이던 8회 1사 2루에 구원 등판, 상대 주자의 홈 쇄도 자체를 봉쇄했다. 최경철은 2루 땅볼, 오지환은 삼진이었다.

이처럼 정재훈이 등장하면 득점은 고사하고 진루 자체가 쉽지 않다. 빠른 공을 내세워 삼진을 잡는 유형은 아니지만 제구가 워낙 좋아 벌어지는 일이다. 이날 현재 24경기에서 그가 건네 받은 주자는 모두 18명. 그 중 홈을 밟은 주자는 단 2명. 승계주자 득점 허용률이 고작 0.111에 불과하다. 15이닝을 던진 리그 불펜 투수 중 단연 1위다. 기록상으로 kt 조무근이 같은 수치를 찍고 있지만, 승계 주자 9명-득점 허용 1명으로 주자 자체가 2배 적다. 또 1.11 평균자책점 정재훈과 7.79 조무근은 안정감에서 차이가 상당하다.

그렇다면 잔루를 만드는 비결에 관심이 쏠린다. 주자 있을 때 등판하는, 그 속내도 궁금하다.


2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한화와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7회초 2사 만루서 두산 정재훈이 한화 정근우를 삼진 처리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4.24.
정재훈은 일단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전광판에 찍힌 점수를 보고 최대한 편하게 던진다"고 했다. "불펜이라면 이런 상황이 한 두번이 아니지 않나. 3점 차라면 2점 줘도 된다는 생각을 갖는다. 코칭스태프에서 주문하는 것도 같다. 자칫 경기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동점만 허용하지 말자고 마음 먹는다"고 했다. 또한 "주자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타자에 더 집중한다. 줄 점수는 '줘도 된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을 던져야 결과가 좋을 때가 많다"면서 "어쨌든 우리 불펜 투수들이 7회까지 앞선 경기를 블론 없이 지키고 있어 기분 좋다. 우리에겐 과정도 중요하지만, 막고 있다는, 또 막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잔루를 만드는 기술적인 비결은 역시 커터다. 앞서 김태형 감독이 "20대 때 스피드는 없지만 커터를 효율적으로 던지고 있다"는 분석과 일치한다. 정재훈은 "사실 커터를 던진 지는 꽤 됐다. 오른손 타자 몸쪽에다 던지는 게 예전과 올 시즌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그동안은 왼손 타자 몸쪽에만 던졌다"고 말했다. 이어 커터가 조금이라도 몰리면 좋은 먹잇감이 될 테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대다수의 투수가 던지지 않나. 나 역시 던져야 한다"며 "사실 TV 중계 화면만 봐서는 꺾이는 각도를 잘 모르겠더라. 아마 포수와 타자, 나만 '지금 이 공을 커터로 던졌구나'라고 느낄 것"이라고 웃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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