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팀에서만 선수-지도자, 드물어진 케이스 축복일까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3-03 10:31


삼성과 KIA의 연습경기가 19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온나손 아카마 구장에서 열렸다. 7대1로 승리한 후 삼성 류중일 감독이 KIA 선수단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오키나와=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2.19.

칼 야스트렘스키는 1959년 입단해 1983년 은퇴할 때까지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보스턴 소속 선수의 역대 최다 출전경기, 안타, 타점,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스탠 뮤지얼은 1941년부터 1963년까지 22시즌 동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으로만 뛰다가 은퇴했다. 오랫동안 야스트렘스키는 레드삭스를 상징하는 선수였고, 뮤지얼은 역대 최고의 카디널스 선수로 통했다. 조 지라디 뉴욕 양키스 감독은 여러 팀을 거쳤는데, 양키스에서 선수, 코치를 경험하고 사령탑까지 올랐다. 199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다카하시 요시노부는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선수 은퇴와 동시에 정식코치를 건너뛰고 감독이 됐다. 그의 전임자인 하라 다쓰노리 감독도 요미우리에서만 선수, 코치를 한 뒤 두 차례에 걸쳐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한팀에서만 선수로 뛰다가, 지도자 생활을 이어간다는 건 축복일까.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는 물음인데, 팀과 꾸준한 신뢰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면 어려운 일이다. 주축 선수가 해외 코치 연수를 거쳐 같은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는 게 오랫동안 공식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야구판이 커지면서 한팀에서 선수, 지도자 생활을 계속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프로 생활을 처음 시작한 팀, 고향팀에 대한 애착 내지 충성심을 얘기한다는 게 왠지 촌스럽게 느껴지는 시대가 됐다.

그래도 꿋꿋하게 처음 시작한 팀에 깊게 뿌리를 내린 야구인들이 있다. 대표적인 지도자가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감독(53)이다. 경북고-한양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삼성에 합류한 류 감독은 1999년까지 선수로 뛰었다. 이후 주루코치, 수비코치를 거쳐 2011년 선동열 감독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크게 주목받은 선수, 화려한 선수 생활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지도자들이 거쳐가는 동안 흔들림없이 자리를 지켰다는 건, 온화한 성품에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덕분일 것이다. 물론, 시운도 따라줬다. 올해로 삼성맨이 된 지 30년. 류 감독은 라이온즈 구단 역사와 함께 한 산증인이다.

류 감독 말고도 삼성에서만 선수, 코치를 하고 있는 지도자가 있다. 1994년 입단한 김한수 타격코치(45)와 1995년 인연을 맺은 김재걸 작전코치(44)다. 김한수 코치는 2007년, 김재걸 코치는 2009년까지 선수로 뛰다가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이 29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스프링캠프에서 훈련을 했다. 주형광 코치가 모자를 삐딱하게 쓴 이성민의 모자를 누르고 있다. 피오리아(미국 애리조나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01.29/
부산고를 나온 주형광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40)도 '부산', '롯데'하면 떠오르는 '롯데 사람'이다. 1994년 고졸 우선지명을 받아 입단해 2007년 선수 은퇴 후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코치 연수를 했다. 일본 체류 기간을 빼고는 줄곧 고향팀에서 선수를 지도했다.

주형광 코치는 "한팀에서 선수, 코치를 하다보니 선수들의 성격과 성향을 잘 안다는 게 장점이다"며 "계속 부산에서, 롯데에서 야구를 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주 코치는 아울러 경계해야할 부분까지 언급했다. 그는 "오랫동안 있다보면 모든 게 익숙해 마인드가 느슨해질 수가 있다. 또 야구를 보는 시각이 조금 단순해 질 수도 있다. 우리 팀 성적이 좋았을 때보다 안 좋았을 때가 많았는데,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곽현희 KIA 타이거즈 트레이닝코치(43)와 김종국 주루코치(43)는 1996년 입단해 타이거즈를 지키고 있다. 해태 마지막 시기에 주축투수로 마운드를 이끌었던 곽 코치는 2004년 선수 은퇴 후 주니치 드래곤즈 연수를 한 뒤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곽 코치는 타이거즈에 강한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오래하지 못했는데, 선수들이 입단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늘 기회를 준 팀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장원진 두산 베어스 타격코치(47) 또한 다른 팀과 쉽게 매치가 안 되는 지도자다. 1992년부터 두산에 들어와 25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선수 은퇴 후 해외 코치 연수를 한 기간을 빼고는 현장에 있었다. 그는 "솔직히 선수, 코치로 프로팀에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랫동안 선수로 뛰다가 코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어 감사한다. 좋은 팀을 만난 덕분이다"고 했다.


유지현 LG 트윈스 작전코치(45)에게 트윈스는 유일한 '우리팀'이다. 1994년 입단해 2004년까지 선수로 11년을 뛴 후 코치로 후배들과 호흡해 왔다. 제춘모 SK 와이번스 투수코치(34)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23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이시가와 구장에서 LG 트윈스의 전지훈련이 열렸다. LG 유지현 코치가 선수들과 런닝 훈련을 하고 있다. 오키나와=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2.23.
한화 이글스는 2014년 말 김성근 감독이 취임한 후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 다수가 유니폼을 벗었다. 이글스를 넘어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레전드'이자 영구결번의 주인공인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코치가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사실 뛰어난 선수, 코치가 한팀에서만 활동하기 힘든 시대다.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이 커져 좋은 조건을 따라 팀을 떠나는 게 어색하지 않게 됐다. 9, 10 구단이 출범하고 구단들이 2군과 육성군을 강화하면서, 코치가 부족한 상황이다. 다른팀 코치를 계약금에 다년계약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모셔가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유혹이 많아졌다.

한 구단 프런트는 "예전에는 한팀에서 계속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야구인이 많았다. 구단도 이런 부분을 신경썼는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요즘에는 특정팀 이미지로 굳어지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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