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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게 전화 한통에서 시작됐다. 라오스에 거주하고 있는 지인이 2013년 전화를 걸어와 "야구를 보급하고 싶다. 시즌이 끝나면 와 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건성으로 넘겼는데 낯선 사회주의국가,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58)은 일단 2014년 4월 자비 1000만원으로 야구장비를 구입해 보냈다. 또 SK 선수들이 착용했던 유니폼, 스파이크 등 야구용품 5박스를 모아 부쳤다. 이 전 감독의 팬클럽 '포에버 22' 회원들이 유니폼 60벌을 제작해 보내기 전까지 라오스 유일의 야구팀 라오 J브라더스 선수들은 SK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4. 오는 29~31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에서 한국-라오스 친선야구대회가 열린다. 라오 J브라더스와 국내 팀간에 경기가 벌어지는데, 국내 참가 희망자들이 모여 팀을 구성한다. 축구장에 간이 펜스를 설치해 치르는 대회다. 항공료와 숙식비는 참가자가 내는데, 대회 진행비는 이 전 감독이 책임진다. 현재 라오스야구협회 출범작업이 진행중이고, 야구장 건립이 논의되고 있다. 24일 출국예정인 이 전 감독은 "이번에 가서 야구장 부지 문제를 매듭지을 생각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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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감독은 얼마전 인천지역 한 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이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고 야구 얘기를 들려줬다. '야인 이만수'의 재능기부를 접하면 두번 놀라게 된다. 우선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초등학교, 리틀야구팀부터 중고교 엘리트팀, 대학팀, 티볼팀, 사회인야구팀까지 망라한다. 지원 요청이 들어오면 조건없이 달려갔다. 올해는 한 여자야구팀이 그를 호출했다. 이 전 감독은 "야구 좋아하는 여성이 결혼해 낳은 아이가 선수는 아니더라도 야구팬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올해 4월까지 이미 일정이 꽉꽉 들어차 있다.
지난해 전국 방방곡곡 40여개 초중고교를 찾았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한해의 절반 넘게 집을 비웠다.
이 전 감독의 재능기부는 순도 100%다. 교통비며 숙식비 등 모든 경비가 자비부담이다. 물론, 주최측의 성의가 담긴 봉투도 사절이다. 이 전 감독은 "재능기부를 갔는데 그쪽 후배가 봉투를 내밀길래 '나를 뭘로 보느냐'고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만일 돈을 받았다면 다른 팀에 봉사하러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재능기부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고 했다. 시작할 때부터 기준을 명확하게 했다. 어디까지나 'KBO 육성위원 이만수'가 아니라 '야구인 이만수'로 하는 일이다.
야구 부원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할 때가 많다. 이 때 이 전 감독이 강조하는 게 '기본과 집중, 팀 플레이'이고, '결코 포기하지 말고 열정과 목표를 가져라'이다. 강연 메뉴얼까지 만들어 놨다. 눈에 띄는 게 '10+3' 항목이다. 10년 단위로 3차례 시기별 목표를 세워 꿈을 이룬 경험을 이야기 해준다. 그는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하는데, 장기적인 목표가 없으면 포기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선수를 지도하는 장면은 동영상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려놓는다.
"46년간 야구를 하면서 늘 받기만 했다. 이제 되돌려 줄 때다. 선수 시절에 시간이 없어 못한 일을 야인이 되어 한다. 아이들 눈빛, 배우려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베푸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배우고 즐거움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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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야구인들의 재능기부가 활발한 편은 아니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도자들 대다수가 칩거하거나 야구판 언저리를 맴돈다. 다들 꿈은 하나, 프로 복귀다. 그런데 이 전 감독은 조금 다르다.
"후배들에게 야구인이라면 사회에 기여해야한다는 인식, 밑거름을 만들어주고 싶다. 갖고 있는 재능이 아깝지 않나? 돈을 기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나 그건 조금 쉬운 방식이다. 직접 나서서 재능을 나눠주는 게 더 의미가 크다."
이 전 감독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일정을 조금 줄일 생각이다. 비용 부담이 생갭다 크다. '지난해 어느 정도 썼느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었다. 그는 "일반 직장인 연봉을 두배쯤 쓴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열정이 크다고 해도 가족의 지지가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이 전 감독에게 부인 이신화 여사가 든든한 우군이다. 이 전 감독이 재능기부 얘기를 꺼내자 이 여사는 '우리가 굶거나 그런 상황은 아니다. 정말 어려울 때 이야기할테니, 그 때까지는 신나게 해보라'고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프로 감독직에서 물러났을 때 이 여사가 자동차를 사줬는데, 지난 한해 주행거리가 4만km를 넘었다. 큰 도시를 피해 작은 도시를 다니다보니 더 그랬다. 지난해 1월 처음 찾은 곳이 경북 문경글로벌선진학교. 일주일쯤 머물며 지도를 하다가 돌아왔다. 오가는 길에 "우리 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비경을 접한 것도 소득이었다.
봉사가 이 전 감독의 삶에서 새로운 일은 아니다. 삼성 선수시절에도 팬들과 함께 연탄을 나르고, 양로원 고아원을 찾았다. 지난해 말 그는 팬클럽 회원들과 치킨을 조리해 경기도 이천 장애인시설에 전달했다.
요즘 이 전 감독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라오스 야구장이다. 라오스 최초의 정식 야구장 건립 작업이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7일 라오스 현지의 지인이 라오스 NOC(국가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라오스 정부가 야구장 부지 제공을 약속했다. 야구장 조성비용 1억5000만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 전 감독은 후원기업 찾기에 나서야 한다. 그는 "내 일이라면 머리 못 숙인다. 야구장 야구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 머리를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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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현지에서 '야구장을 정말 지을 수 있는 거냐'고 물으면, 이 전 감독은 "구걸을 해서라도 짓겠다.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라오스 정부에 야구장이 만들어지면 한국 아마추어팀이 전지훈련 캠프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설득을 해 왔다.
라오스 청년들에게 야구는 어떤 영향을 줬을까. 이 전 감독은 "야구를 통해 협동이 뭔지, 희생을 알려주고 있다. 또 서로 도와야 한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전 감독의 라오스 야구 얘기는 현지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15번이나 방영했다고 한다.
요즘엔 태국,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등 라오스 인근 국가에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온다. 이 전 감독은 이런 관심이 동남아 전 지역으로 퍼져 야구가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정 지역에 편중된 야구 저변이 확대되면, 야구가 종합국제대회 정식 종목 채택에 도움된다.
선수 시절이 야구인생의 1막이었다면, 지도자로 2막을 살았고, 야인이 된 지금은 3막이다. 팀을 떠난 후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만수의 눈'이라는 이름으로 야구 칼럼을 쓰고 있다.
그는 화려한 선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돌아가면 훈련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 전 감독은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봤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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